딱, 이웃 얘기네… ‘공감 드라마’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3일 03시 00분


평범한 주인공들 드라마 전면에

기존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일상의 평범한 인물을 앞세운 드라마가 최근 여러 편 등장했다. tvN ‘라이브’는 강력계 형사가 아닌 지구대 경찰이 주인공이다. tvN 제공
기존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일상의 평범한 인물을 앞세운 드라마가 최근 여러 편 등장했다. tvN ‘라이브’는 강력계 형사가 아닌 지구대 경찰이 주인공이다. tvN 제공

경찰은 늘 연쇄살인만 수사한다. 그 뒤엔 언제나 거대한 부정부패가 도사리고 있다. 권력과 유착하는 것도 흔한 일. 병원도 마찬가지. 심각한 병 아니면 다루지도 않는다. 의사는 꼭 연애를 하고 권력 다툼을 벌인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이나 병원 등은 어쩜 이리 똑같은지. ‘나쁜 놈의 집합소’이며 ‘정의의 사도’가 출몰한다. 하지만 세상엔 정말 그런 인간들만 있는 걸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해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평범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10일 방영을 시작한 tvN ‘라이브’는 가상의 ‘홍일지구대’가 배경이다. 현실의 일상을 담은 ‘진짜 경찰’의 이야기를 다뤘다. 제작진은 실제로 밤만 되면 음주 폭행 사건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전국에서 가장 바쁜’ 서울 홍익지구대를 찾아가 취재했다.

극본을 맡은 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서울 광화문 촛불 집회를 막는 지구대 경찰 공무원을 보고 드라마를 구상했다고 한다.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취재를 해보니 지구대 경찰도 똑같은 공권력의 희생양”이라며 “많은 사람이 시원한 복수극을 기대하겠지만 풀뿌리 같은 국민의 총알받이로 선 사람들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기존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일상의 평범한 인물을 앞세운 드라마가 최근 여러 편 등장했다. KBS2 ‘우리가 만난 기적’(위 사진)은 중국집 주방장을, 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아래 사진)는 의학드라마지만 의사가 아닌 인물들이 중심이다. KBS·tvN 제공
기존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일상의 평범한 인물을 앞세운 드라마가 최근 여러 편 등장했다. KBS2 ‘우리가 만난 기적’(위 사진)은 중국집 주방장을, 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아래 사진)는 의학드라마지만 의사가 아닌 인물들이 중심이다. KBS·tvN 제공

2일 처음 방영한 KBS2 ‘우리가 만난 기적’도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겉보기엔 잘나가는 은행지점장 송현철(김명민)이지만 그 안에는 중국집 주방장 송현철(고창석)이 빙의돼 있다. 능력지상주의자로 주변인에게 쌀쌀맞던 송현철에게 평범한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지난달 26일 첫선을 보인 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도 메디컬 드라마의 고정관념을 깨고 물리치료사와 방사선사, 실습생에게 초점을 맞췄다.

양혜승 경성대 방송학과 교수는 “드라마가 경제적이고 화려한 등장인물을 통해 판타지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공감’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요즘 시청자들은 사회적 약자인 등장인물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기쁨과 슬픔이 결합된 정서를 느껴 더 큰 공감을 경험한다는 설명이다.

드라마 ‘라이브’에서 최근 다룬 에피소드들은 대표적인 사례다. 가정폭력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아이들이나 약혼자의 시선을 걱정해야 하는 성폭행 피해자 등을 다뤘다. 세상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지만 당사자에겐 일상은 물론이고 평생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60세 경위 이삼보(이얼)가 비행 소년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부끄러워 말 못하는 에피소드는 경찰 역시 속내는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모습을 그려냈다. 홍익지구대 근무 경력을 지닌 한 경찰은 “현장에서 진짜 경찰들이 일선에서 마주치고 해결하는 사건은 대부분 생계형 현실 범죄”라며 “이런 드라마를 통해 현장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시청자들이 있다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그간 국내 드라마는 흔히 부패권력이나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사회악’ 캐릭터의 몰락을 통해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며 “순기능도 있지만 틀에 박힌 전형적인 소재의 남발은 시청자에게 심리적 빈곤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평범한 주인공#공감 드라마#드라마 라이브#지구대#노희경 작가#우리가 만난 기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