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없어서 곤란하지 않다면 필요 없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7일 03시 00분


《곤란하지 않다면 분명 필요 없는 거야―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놀·2017년)》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 중에 해달을 주인공으로 그린 ‘보노보노’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딸꾹질을 100번 하면 죽는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딸꾹질을 멈추려 물을 잔뜩 마시거나 뛰어다니는 등 온갖 고생을 하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주인공이다. 느긋한 성격과 착한 품성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장난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어린 마음에도 ‘보노보노는 왜 속고만 살까’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고 바쁜 삶에 지쳐서 여유가 필요할 때 우연히 서점에서 보노보노를 다시 만났다. 방송작가이자 에세이 작가인 김신회 씨가 쓴 이 책에서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그림을 엮어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담아냈다. 책을 읽으면서 직장, 지인 등 주변 인간관계에서부터 나 자신에 대한 고민까지 모든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곤란하지 않다면 필요 없다는 말은 보노보노가 아빠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어느 날 태풍으로 커다란 바위 언덕이 무너져 내리면서 보노보노가 사는 언덕 아래에 작은 섬이 생긴다. 난생처음 자기 섬이 생겼다고 기뻐한 보노보노 부자는 섬 위에 나무 집을 만든다. 하지만 섬이 갑자기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애써 만든 집도 없어져버린다.

집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보노보노가 먼저 “아빠, 우리 집이 없어도 곤란하지 않지?”라고 묻는다. 아빠가 “그렇지” 하고 수긍하자 보노보노는 “곤란하지 않다면 분명 필요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서울로 대학을 온 뒤 10년 넘게 세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집이 없어서 곤란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반발심이 가장 먼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잠깐 접어두고 다시 생각하면 ‘그래도 지낼 곳이 없는 건 아닌데 너무 급하게만 생각한 것 아닌가’ 싶었다.

없어서 곤란하지 않다면 필요 없다는 말은 물건을 살 때도 기준이 될 수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을 싸다는 이유로 사려고 할 때 한 번 더 고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땐 보노보노가 바보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배울 점이 생겼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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