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세와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뉴욕에 살며 주머니 가벼운 유학생으로 4년을 버텼다.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학교 근처에 살며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했다. 서른 먹은 늦깎이 유학생 남편은 그야말로 은퇴 뒤에나 가능하다는 ‘삼식이’가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코딱지만 한 부엌에서 밥만 하며 4년을 보내고 남편이 공부만 끝나면 절대 집에서 밥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요리학교에 들어가면서 내 결심은 야무진 공상이 됐고, 남편을 위해 요리한 시간보다 남을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어지고 말았다.
종일 밥하느라 애쓰는 내가 안쓰러웠던 남편은 주말이 되면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브런치를 사주곤 했다. 탐스럽게 노른자를 살린 달걀프라이와 감자를 채 썰어 버터에 지진 해시브라운,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이 함께 올라간 한 접시에 배가 불렀고. 버터와 메이플시럽이 녹아내리는 폭신한 팬케이크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에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햄과 치즈를 끼워 넣고 버터로 지진 샌드위치에 베샤멜소스(우유와 크림으로 만든 화이트소스)와 달걀프라이를 얹은 크로크마담(croque madam)을 먹으면 파리로 여행 온 듯한 기분이었고 진하게 내린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일주일간의 노동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것은 바삭하게 구운 잉글리시 머핀에 두툼한 햄을 구워 올리고 얌전하게 익힌 수란을 얹어 홀런데이즈(hollandaise)소스를 뿌린 에그 베네딕트(eggs benedict)다. 달걀노른자와 녹인 버터를 거품기로 섞어 유화시킨 후 소금과 레몬즙, 카옌페퍼(cayenne pepper·서양 고춧가루의 일종)로 간을 한 홀런데이즈소스는 내가 요리학교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수란을 터뜨려 흘러내리는 노른자에 달걀노른자로 만든 느끼한 듯 고소하면서 상큼한 홀런데이즈소스를 섞어 먹는 맛은 신세계였다. 그걸 제대로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을 시작으로 서양 요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브런치는 요리사로 인생을 전환하게 만들어준 은인의 요리이자 고단한 유학생활을 위로해준 추억의 요리다. 서울에서 브런치를 먹으러 가면 평일엔 9할이 주부들이고 주말엔 9할이 젊은 여성이다. 여자를 위로하는 요리 브런치, 여자의 계절 봄에 먹어야 하는 계절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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