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飛’는 현지시각 17일 미국에서 발생한 사우스웨스트항공 1380편 엔진 폭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승객의 명복을 빕니다. 이에 앞서, 영공을 지키다 순직한 우리 공군 F-15K 전투조종사 두 분께도 뒤늦게나마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공항에서 비행기 타려고 기다리면서 밖을 보니 엔진이 찌그러진 비행기가 있더라. 다른 비행기는 다 엔진 모양이 동그란데 특별히 이렇게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지인이 대화 도중 이런 궁금증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날飛’에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여러분도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구경했던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김포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고 계신 기억을 하시면 아마 더 잘 떠오르실 겁니다.
‘엔진이 찌그러진 비행기’는 보잉社에서 만든 737 항공기입니다. 비정상은 아니고,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엔진이 땅에 부딪히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737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에 비해 유난히 높이가 낮고, 그래서 엔진이 땅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엔진 덮개의 아랫부분을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알아보려면, 737 기종이 처음 나왔을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737 기종은 1967년 4월 9일 처음 초도비행을 했습니다. 처음 나왔던 737-100 기종은 최대 좌석 수 110명에 최대 비행거리는 2850km(1540해리) 정도인 소형 단거리용이었습니다. 2850km는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를 직선거리로 이은 정도입니다. 미국의 경우 뉴욕 국내선 공항인 라과디아 공항에서 출발하면 중부까지밖에 못 가는 거리입니다.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직선거리가 아니라 항로를 따라 비행하면 항속거리는 더 짧아집니다. 현재 나온 가장 최신형 737인 737MAX 기종이 200명 넘는 사람을 태우고 7000km(3850해리)가 넘는 거리를 날 수 있는 점과 비교하면 초기 모델의 성능은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셈입니다.
당연히 737이 처음 개발될 때는 지역 공항을 오가는 ‘지역항공기(Regional Jet)’ 용도로 개발됐습니다. 땅이 넓은 만큼 공항도 많은 미국에서 ‘지역 공항’은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승객이 타고 내리는 탑승교가 부족하거나, 짐을 싣고 내리는 장비가 부족하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보잉은 737을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우선 짐을 싣는 장비가 없을 때도 공항 수하물 담당 직원들이 그냥 짐을 비행기에 ‘던져 넣을’ 수 있도록 비행기 자체를 낮게 설계했습니다. 땅에서 앞쪽 화물칸 바닥까지 높이가 737-100의 경우 1.3m, 737-800의 경우 1.45m밖에 되지 않습니다. 경쟁 기종인 에어버스社의 A320의 경우 이 높이가 1.99~2.01m 정도로 높습니다.
짐은 던져 넣을 수 있는데 손님은 어떡할까요. 그래서 보잉의 개발팀은 아예 비행기 안에 계단을 심는 옵션도 만들었습니다. 737 일부 기종은 앞쪽 출입문 아래서 숨겨져 있던 계단이 아래 사진처럼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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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비행기를 낮게 설계한 건 처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737-100이 처음 나왔을 때 엔진은 지금과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직경은 더 작고, 길이는 더 길었습니다. 엔진을 비행기 날개 아래 단단히 부착해도 지면까지 58cm 여유가 있었습니다.
비행기도 같은 기종이지만 자동차처럼 디자인과 성능을 향상시킨 새로운 세대(generation) 비행기를 내놓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보잉은 구형 737-100/200에서 737-300/400/500으로 이어지는 ‘클래식’ 기종을 내놓으면서 기존 엔진보다 더 큰 새 엔진을 달기로 합니다. 항공기 엔진은 어느 정도까지는 직경이 커지면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높이가 워낙 낮다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큰 엔진을 원래 위치에 달면 땅에 닿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설계팀은 두 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하나는 구형 737에서 ‘클래식’ 737로 넘어오면서 동체가 길어진 점을 이용해 엔진 위치를 날개 ‘밑’에서 날개 ‘앞쪽’으로 당기고, 위로도 그만큼 바짝 끌어올렸습니다. 또 하나의 묘수가 바로 ‘엔진 껍질 찌그러뜨리기’입니다. 동그란 엔진 덮개 아랫부분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큰 엔진을 장착하고도 바닥부터 엔진 밑바닥까지 적게는 46cm, 많게는 56cm 정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엔진은 비행기에 공기를 공급하고 전기도 공급하고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유압도 공급합니다. 그래서 엔진 덮개 안쪽에는 수많은 파이프와 기계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랫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다 보니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보잉 기술자들은 원래 아래로 지나가야 했던 이런 장비들을 모두 엔진 옆으로 우겨넣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737-300 이후 모델에서 엔진 껍데기는 아래는 눌리고, 좌우로는 불룩 튀어나온 희한한 형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보잉의 개발사(史)를 보면 기술자들이 이런 엔진 덮개를 보고 ‘햄스터 볼 주머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낮게 만들면서 보잉 기술자들이 머리를 싸맨 부분은 엔진 말고 또 한 군데 있습니다. 바퀴입니다. 일단 땅을 박차고 떠오른 비행기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바퀴를 동체 안으로 접어 넣습니다. 그리고 ‘페어링’이라 부르는 덮개로 바퀴를 덮어버립니다. 그래야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37은 동체 높이가 너무 낮아 접어 넣은 바퀴를 덮을 덮개를 만들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기술자들은 고심 끝에 덮개를 달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바퀴를 접어 넣은 모양이 동체 표면과 비슷하게 만들어지게 바퀴를 설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퀴의 바깥쪽 면에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양의 휠을 달아 페어링을 단 것과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처음 개발된 1967년부터 지금까지 그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737은 조종사들에게는 애증이 깊은 항공기라고 합니다. 다른 기종에 비해 자동화도 좀 덜 되어 있고, 조종하기도 좀 까다로운 기종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 비행기는 올해 3월 기준으로 총 9996대가 항공사에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태어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실력이 검증된 민항기의 ‘절대 강자’가 바로 보잉 737 항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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