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보세요. 2000개 이상의 LED 타일로 구성된 총 11개의 대형 스크린이 무대와 객석을 감쌉니다. 이쪽, 이쪽에는 6개의 딜레이 타워(음향의 시차를 없애기 위한 스피커 탑)를 설치할 거고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사무실. 가수 조용필(68)이 원탁 위에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의 도면을 펼쳤다. 다음 달 데뷔 50주년 기념 전국 순회공연을 시작하는 ‘가왕’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돼 있다.
원탁 왼쪽 벽엔 달력이 걸려 있다. 다음 달 12일까지 날짜마다 동그라미가 빼곡하다. “4일 밤부터 조명과 무대 장비 반입, 10일부터 무대 리허설….” 이 완벽주의자는 이미 공연의 전곡 리허설을 10회 이상 해둔 상태라고 했다.
정상에 오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에게 새롭게 도전할 정상이 남아있을까. 그는 이르면 내년에 발표할 신작 얘기를 꺼냈다. 도전 상대는 자신이었다. “‘Hello’를 낸 2013년에서 5년이 지났으니 세계 팝 사운드의 표준도 달라졌죠. 제 음악의 색조도 한 번 더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조용필은 요즘 새로운 창법을 연마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보통 바이브레이션은 원음을 기준으로 음정이 위아래로 떨립니다. 창(唱)은 아래쪽으로 진동하죠. 저는 음정을 위쪽으로 떠는 바이브레이션을 연습 중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미국 가수도 사용하는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죠.” ‘Hello’ 앨범에서 발라드 하나(‘어느 날 귀로에서’)에 그친 자작곡도 차기 앨범에서는 최소 세 곡까지 늘릴 생각이다. “각각 분당 박자 수 100, 110, 124의 미디엄 템포 곡들입니다. 제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유튜브와 국내외 음원서비스, AFN 라디오.’ 조용필이 근래 끼고 사는 세 가지다. 최신 음악을 매일 체크하기 위해서다. “일 끝나고 귀가하면 또 음악으로 소일합니다. 이를테면 2시간 35분짜리 오페라 ‘카르멘’을 4시간에 걸쳐 뜯어보죠. 빠져들면 새벽 서너 시까지도…. 유튜브를 켜둔 채 잠들 때도 있습니다.”
칠순을 앞뒀지만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주로 북유럽의 최신 팝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최근 28세에 요절한 스웨덴 DJ 아비치를 그는 애도했다. “뉴스를 보고 놀랐습니다. ‘Waiting for Love’란 곡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북유럽 음악은 멜로디가 탁하지 않고 깔끔해 아시아 감성과 통하는 걸 느낍니다.”
공교롭게 국내 대중음악의 또 다른 거물 나훈아(71)도 오랜만에 전국 투어를 진행 중이다. 가왕의 공연 일정과 일부 겹친다. 조용필은 “그분은 관객을 말로도 확 휘어잡는다는데 전 그게 안 된다. 벌써 다음 달 공연 때 할 멘트 걱정에 잠자리에서 뒤척인다”면서 웃었다.
공연과 신작 제작, 그 다음 목표는 자신의 대표곡들로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다. “EDM, 힙합, 록으로 완전히 다시 편곡할 작정입니다. ‘꿈’에 랩을 넣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음악의 변화는 그 시대의 10대가 요구하는 것이잖아요.”
세간에 잘못 알려진 ‘조용필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서 하나만 수정해달라고 부탁했다.
“1970년대에 폭포 밑에서 창을 연마하다 피를 토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과장됐죠. 당시에 타고난 미성을 탁성으로 바꾸려 속 소리를 끌어내다보니 구토증세가 생겼습니다. 그 때문에 양동이를 옆에 가져다두고 연습을 한 게 와전된 것 같아요. 그렇게 연마된 지금 목소리에 만족합니다.”
기술적 완벽에 도전해온 ‘가왕’이지만 노래의 마력은 성대의 떨림이나 음향 시스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반세기 동안 무대에 선 그에게도 여전히 부를 때마다 감정을 휘저어버리는 노래가 있다. “‘생명’(1982년)과 ‘1987년의 서울’(1988년)이 그렇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격랑을 은유한 절창이었다. “‘슬픈 베아트리체’(1992년) 역시 그런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만들 때의 생각을 하면 울컥하게 되죠.” 조용필은 설명하기보다 되레 반문했다. “음악이라는 게 뭡니까. 결국은 추억으로 남는 거잖아요.”
조용필의 50주년 기념 투어 ‘Thanks To You’는 다음 달 12일 서울, 19일 대구에 이어 6월 광주와 의정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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