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무대 한편에서 허름한 행색의 노인이 등장해 소리친다. 왠지 위로를 건네는 듯한 인자한 눈빛을 지닌 노인은 우주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는 소리에 지구로 왔다고 주장한다.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최불암의 연기에선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노련미 넘치는 내공이 느껴졌다.
이야기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과 그를 간호하며 점점 지쳐가는 아내, 10년 전 말라야에서 연인을 잃은 천문학자 준호, 사기 누명을 쓰고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보험사 영업사원 진석….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나름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산다는 점에서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는 바로 ‘노인’이다. 실의에 빠진 등장인물들과 독대할 때마다 노인은 “수천만의 별이 이미 지상에 내려와 있는데 왜들 못 보고 있느냐” “별은 (당신 가슴) 거기에도 있다”며 위로를 건넨다. 노인의 말을 듣고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던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깨달음을 얻는다. 타인에게 휘둘려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삶을 뒤늦게나마 돌이켜보고 스스로 위로하며 행복을 찾아간다.
작고 단출한 소극장 무대지만 계단과 ‘별’을 상징하는 전구 조명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아쉬운 점은 세 개의 에피소드가 제각각 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체 주제라는 하나의 궤에 담기질 않아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6만 원. 02-580-1300 ★★★(★5개 만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