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성의 盤세기]분단의 최대 희생곡 ‘조선팔경가’… 남북 정치 현실 따라 가사 난도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7일 03시 00분


<9> ‘대한팔경’ 노래의 원조

‘조선팔경가’ 음반(왼쪽)을 냈던 평양 출신 명가수 선우일선. 김문성 씨 제공
‘조선팔경가’ 음반(왼쪽)을 냈던 평양 출신 명가수 선우일선.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김문성 국악평론가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옛 가요 중에는 ‘조선팔경가’가 있습니다. 금강산, 한라산, 석굴암, 해운대, 압록강뗏목, 부전고원, 백두산, 평양 등 8곳의 명승지를 노래한 곡(왕평 작사, 형석기 작곡)으로 선우일선이 부른 북한 ‘계몽기 가요’의 대표곡입니다.

최근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 이후 ‘계몽기 가요’라는 말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정의하는 계몽기 가요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 수난기에 만들어져 국민들에게 애국사상과 자주독립 정신을 고취한 노래들로 동요, 유행가, 신민요, 계몽가요 등을 통칭합니다. 조선팔경가도 이러한 정신에 부합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평양 기성권번 출신으로 1934년 ‘꽃을잡고’로 혜성처럼 등장한 선우일선은 조선팔경가외에도 능수버들, 원포귀범, 영감타령, 태평연 등 많은 노래를 히트시킵니다. 그런데 광복 후 한국에서 ‘조선팔경가’는 ‘대한팔경’으로, ‘영감타령’은 ‘잘했군 잘했어’로, ‘능수버들’은 ‘신천안삼거리’로, ‘태평연’은 경기민요 ‘태평가’로, 그리고 ‘원포귀범’은 ‘자진뱃노래’로 곡명이 바뀌거나 작사 작곡가가 바뀌거나 미상의 전래민요로 포장된 채 불립니다.

그 가운데 조선팔경가는 황금심 이래로 고복수, 김세레나, 박재란, 백설희, 김연자 등 수 십 명의 유명가수가 리메이크하며 지금도 종종 가요프로그램에 등장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남북한 작사가들에 의해 가사가 난도질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명승지가 빠지는가 하면, 남한에서는 북한의 명승지 대신 남한의 명승지로 바꿔 불립니다. 그 이유를 몇몇 음악학자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찾습니다. 특히 6·25전쟁 이후 ‘대한팔경’으로 불린 것은 ‘조선’이라는 말에 대한 당국의 거부감 때문이라는 추정이 나왔죠. 이 때문에 남북분단 최대의 희생곡을 ‘조선팔경가’로 꼽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를 반박하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1964년 한국민요연구회의 신민요 발표회 때 이소향, 묵계월, 안비취 명창이 관현악에 맞춰 부른 곡명이 ‘조선팔경가’였고, 등장하는 팔경은 선우일선의 원곡에 실린 명승지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확인되지 않은 가설 때문에 또 한번 왜곡이 있었던 겁니다. 오히려 저작권 개념이 불명확한 시대에 시빗거리를 없애기 위해 음반사들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조선팔경가#분단의 현실#계몽기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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