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상을 바꾼 大家들에겐 반짝이는 호기심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5일 03시 00분


◇오리지널 마인드/엘리너 와크텔 지음/허진 옮김/720쪽·2만8000원·엑스북스

캐나다 유명 라디오 진행자
제인 구달, 올리버 색스 등 각 분야 대가들 만나 인터뷰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대중과의 소통 가장 중시”

저자가 진행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했던 대가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기호학의 대가 움베트로 에코, 저자인 CBC 라디오 ‘라이터스 앤드 컴퍼니’의 진행자 엘리너 와크텔,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버 색스, 미국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받는 언어학자 놈 촘스키(왼쪽부터). 구글 화면 캡처
저자가 진행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했던 대가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기호학의 대가 움베트로 에코, 저자인 CBC 라디오 ‘라이터스 앤드 컴퍼니’의 진행자 엘리너 와크텔,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버 색스, 미국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받는 언어학자 놈 촘스키(왼쪽부터). 구글 화면 캡처
풍진을 앓던 12세 소녀는 열흘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친구들과 뛰놀 수 없으니 답답하진 않았을까. 오히려 그녀는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 시기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기억한다. 소녀가 꺼내 든 책은 퀴리 부인, 에이브러햄 링컨 등의 전기였다. 세상을 바꾼 이들이 갖춘 용기와 고집, 창의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50여 년이 흐른 뒤 소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가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너 와크텔이다. 그녀가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방송하고 있는 캐나다 CBC라디오의 ‘라이터스 앤드 컴퍼니’는 세계적인 인사들이 출연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책을 통해 위인들을 경험했던 소녀가 앞으로 위인이 될 현 시대의 작가, 예술인, 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책은 저자의 라디오에 출연했던 유명 인물들의 인터뷰를 한데 묶었다. 움베르토 에코, 놈 촘스키, 올리버 색스, 재러드 다이아몬드, 제인 구달 등 각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대가들이 총출동했다. 인터뷰 원문 형식을 그대로 살려 대화체로 구성했다. 그 덕분에 책 한 권으로 대규모 특급 강연을 듣는 듯한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저자가 찾아낸 대가들의 공통점은 ‘호기심’이다. 환경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84)은 인터뷰에서 “우리 인류의 조상이 다른 유인원들처럼 나무로 올라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며 영장류 연구 계기를 밝혔다. 이 궁금증은 영국에 살던 구달을 아프리카 케냐로 이끌었고, 그녀의 스승인 나이로비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 루이스 라키를 만나게 했다. 이후 그녀의 도전은 미국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처럼 “구달의 침팬지 연구는 서구의 가장 위대한 과학 업적 가운데 하나”가 됐다.

기호학의 대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자신의 전공뿐 아니라 역사, 과학이론, 신학, 천문학 등 각종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독서로 섭렵했다. 어마어마한 개인 장서로 인해 아파트 벽이 무너질 뻔해서 2번이나 이사해야 했다는 그의 일화는 대가를 만든 힘을 짐작하게 한다.

흥미로운 건, 역설적으로 대가들은 ‘쉬움’을 지향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학계는 세계 어디나 어휘가 지나치게 전문화되고, 대중의 수준에 맞추는 작가와 전문가를 경멸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들은 오히려 대중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했다. 인도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84)은 “돈이 반드시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 중 기근을 겪은 곳은 없다” 등의 말처럼 어려운 경제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데 달인이다.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직관적인 설명을 내놓는 그는 기근과 불평등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에 편입시킨 공로로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책을 읽다보면 ‘대화의 대가’인 저자의 매력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말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묻는 사람”이라는 소설가 캐럴 실즈의 평가처럼 예리함과 배려, 유머를 두루 갖춘 저자의 질문법을 만날 수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선 분야를 막론하고 거장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가들의 인터뷰를 보며 우리 사회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오리지널 마인드#엘리터 와크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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