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위, 다른 팬들은 분발하라” 음원 사이트는 타임머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7일 17시 27분


최신음악과 실시간 차트 메뉴가 첫 화면을 도배한 국내 음원서비스 ‘멜론’의 메인화면(왼쪽)과 사용자 맞춤형 음악 제안을 전면에 내세운 프랑스의 ‘디저’ 메인화면(오른쪽). 스마트폰 화면 캡처
최신음악과 실시간 차트 메뉴가 첫 화면을 도배한 국내 음원서비스 ‘멜론’의 메인화면(왼쪽)과 사용자 맞춤형 음악 제안을 전면에 내세운 프랑스의 ‘디저’ 메인화면(오른쪽). 스마트폰 화면 캡처
멜론, 지니 등 국내 음원 서비스의 연내 이용료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이들 서비스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과당경쟁을 부추기는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사용자 맞춤형 음악 제안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제대로 된’ 음원서비스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외 음원 서비스의 현황을 2회에 걸쳐 짚어봤다.

●타임머신? 순위 예측도 제공… 팬덤 소비 부추기는 멜론

“16:03:31(현재 시간) 현재 기준 17:00 순위 1위 예측: 닐로 ‘지나오다’”

회사원 김진만 씨(32·가명)는 6일 오랜만에 멜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깜짝 놀랐다. 멜론 실시간 차트에 있는 ‘다음 순위 예측’이란 메뉴에 위와 같은 정보가 표시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현재 1, 2, 3위 음원의 실시간 점유율이 선 그래프로 표시되는 것도 놀랐는데, ‘지금 추세라면 1시간 뒤 누가 1등을 하니 다른 팬들은 모두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멜론이 대놓고 던지는 것으로 읽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음원 서비스의 행태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를 통해 사용자들의 끝없는 재접속을 유도하는 네이버와 같은 포털 사이트의 문제점과 그대로 닮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수 닐로의 차트 급상승 이슈에 이르기까지 십수 년간 제기된 음원 사재기, 팬덤간 경쟁에 의한 어뷰징(abusing·댓글이나 클릭수 조작 등 부정행위) 논란의 출발점이 바로 이런 서비스에 집약됐다고 분석한다.

결국 소수 팬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실시간 차트는, 메인화면을 보고 습관적으로 경향을 소비하는 다수의 일반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한 익명의 음반 제작자는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불법적 방법도 동원하고픈 유혹에 시달린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멜론의 ‘다음 순위 예측’ 서비스야말로 팬덤 대결을 부추겨 차트를 왜곡하는 실시간 차트의 문제가 집약된 사례”라며 “멜론이 한국 최대의 음원서비스로서 부끄러워하며 가장 먼저 폐지해야 할 서비스”라고 했다.

●“사용자 위한 ‘서비스’ 정신 잃은 음원 서비스”

실제로 실시간 차트는 사용자에게 그다지 편리하지도 않다. 중장년층이나 음악애호가들 가운데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해외 음원서비스는 국내와 달리 첫 화면부터 사용자 개별 맞춤형 큐레이션(음악 제안)이나 라디오 기능을 내세운다. 수용자를 먼저 고려하는 모양새다.

음악애호가 김철희 씨(47)는 “계속 새로운 것만 권하는 멜론 등의 서비스가 (내게) 안 맞는다. 라디오 듣듯 내 취향에 맞는 곡들을 계속 추천해주는 애플뮤직과 타이덜을 애용한다”고 했다. 음반사 ‘스티즈’의 이윤혁 씨는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한 명 한 명을 조명하며 이슈가 아닌 음악 그 자체와 본질에 집중하는 서비스가 아쉽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 말만 ‘음원 서비스’이지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 정신은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음원서비스 업계 관계자들은 실시간 차트를 유지하는 것이 “소비자가 원해서”라고 항변한다. 한 음원 서비스 관계자는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지만, 가요와 최신 곡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실시간 차트여서 메인에 노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눈앞의 손익을 접어두고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실시간 차트 폐지가 음원 서비스 회사에도 이득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 평론가는 “국내 서비스는 음악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추천을 고민하기보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급급해 보인다”면서 “음악 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실시간이 아닌 주간이나 월간 차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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