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트레킹] <1> ‘산(山)과 함께, 신(神)과 함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8일 04시 00분


산악인 한왕용과 괴짜 신부 홍창진의 ‘꿈의 트레킹’

고도 3400m 도시 쿠스코의 광장. 잉카트레킹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점령 이후 여느 유럽과 흡사한 모습이 됐다.
고도 3400m 도시 쿠스코의 광장. 잉카트레킹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점령 이후 여느 유럽과 흡사한 모습이 됐다.


※8일부터 5회에 걸쳐 두 사람의 잉카 트레킹에 얽힌 스토리를 싣는다. 세계적인 산악인과 방송, 영화, 책 저술 등 다양한 세계를 추구해온 종교인의 만남이다. ‘꿈의 트레킹’ 코스로 불리는 잉카 트레킹을 포함해 산과 신에 얽힌 대화와 사연을 담는다.

2004년 배우 손현주 씨 소개로 한왕용 대장을 처음 만났다. 엄홍길 대장과 고 박영석 대장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 세계에서는 11번째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에 오른 대 산악인이다. 왜소한 체격에 수줍음 많은 모습이 한 대장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신부님, 저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세례명은 바오로입니다.”

첫 대면에서 쑥스러운 듯 건넨 한 대장의 인사. 여느 신부처럼, 초면이더라도 신자인 지인을 만났을 때는 일면식이 있는 비신자를 열 번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같은 해 어느 날 그에게 연락이 왔다. “신부님, 청소하러 히말라야에 같이 가시죠.”

당시 그는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 이후, 14좌의 베이스캠프를 청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산속 자연을 지키는 ‘클린 마운틴’ 운동을 활발히 펼치던 중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적인 산악인과 히말라야에 간다는 건 (청소고 뭐고) 너무 흥분되는 일이었다. 두 말 없이 따라 나섰다.

이후 한 대장과의 산행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2006년 배우 손현주 씨, 2008년 작고한 최진실 씨, 백혈병 환우들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왔고, 같은 해 모 방송 촬영 차 히말라야 묵티낫트에도 다녀왔다. 2008년에는 배우 김유석 씨와 히말라야를 동행했고, 2010년 알프스 몽블랑 라운드 트레킹도 함께 했다.

그리고 올해, 갑자기 한 대장의 연락이 왔다. 올해 안식년이니 한 3주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루 200명만 입산이 허락되는 잉카 트레킹 신청 명단에 신부님 이름도 함께 올리겠습니다. 안식년 선물입니다.”

눈물나도록 고마운 전화였다. 그로부터 수개월 뒤 다시 전화를 받았다. 입산허가가 떨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계 3대 트레킹 중에,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잉카트레킹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드디어 출발 날짜인 4월 2일. 인천공항을 떠나 미국 LA를 거쳐 페루 리마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옛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34시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잉카트레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잉카트레킹 출발점 피스카쿠초(해발 2680m)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 군락을 만나게 된다.
잉카트레킹 출발점 피스카쿠초(해발 2680m)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 군락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해발 3400m나 되는 쿠스코의 고도는 현실이었다. 숨이 계속 가빠 의식적으로 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심호흡을 계속해야 했고, 걸음도 아주 천천히 옮겨야 했다. 6시간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구토기가 생기면서 어지럽기까지 했다. 함께 한 일행 7명도 같은 증세를 보이며 한 대장을 붙들고 호소했다.

세계적인 산악인의 처방은 간단했다. “저도 그래요. 죽겠어요.”

하룻밤 자고 나니 한결 좋아졌다. 몇 분이라도 조금 더 쉬면 딱 좋으련만 한 대장이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자, 출발하시죠.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길 막혀요.”

미니밴을 타고 3시간 쯤 달려 잉카트레킹의 본격적인 출발점인 피스카쿠초에 도착했다. 관리인이 입산허가증을 검사하는데, 자기네 기록과 영문명 스펠링 하나까지 대조해 틀리면 입산 금지란다. 그 살벌한 상황을 지켜보니 입산허가를 받기 위한 한 대장의 노고가 새삼 고마웠다.

잉카트레킹 첫날 점심도 먹기 전에 보게 된 유적지. 3박 4일 이어지는 잉카트레킹의 묘미는 트레킹 중에 이런 잉카인들의 이름 모를 유적지를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잉카트레킹 첫날 점심도 먹기 전에 보게 된 유적지. 3박 4일 이어지는 잉카트레킹의 묘미는 트레킹 중에 이런 잉카인들의 이름 모를 유적지를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어떤 방송도 정규 잉카트레킹 코스를 촬영하지 못했다. 입산 허가를 받기가 그만큼 까다롭다. 출발 수개월 전에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를 확정해 입산허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부터가 어렵다. 그래서 잉카트레킹이라고 방송한 프로그램을 보면 전부 정글 트레킹으로, 마추픽추 옆 숲을 돌아 다시 마추픽추에 이르는 관광코스에 불과하다. 동아닷컴을 통해 일부 동영상이 나가는 것은 잉카트레킹을 촬영한 국내 최초 방송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트레킹이 시작되면 계곡을 따라 2시간 정도 걷는다. 물가에는 웬만한 어른 키보다 훨씬 큰 선인장들이 즐비하다. 빨간 선인장 열매를 파는 마을 주민도 보인다. 한 대장이 한턱 쏘겠다며 일행을 위해 거금(?)을 털었다. 9명이 배불리 먹은 돈이 3000원이다.

홍창진 신부(경기도 광명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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