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꿈꾸는 사람”이라고 답하면서 오은 시인(36)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이 기발한 언어유희는 그의 시집 ‘유에서 유’의 서문이자 오은 시만의 매력이다.
시인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벌여놓은 일이 많다. 문화기획사 응컴퍼니 대표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파스텔뮤직 수석기획자로 음악과 글의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실험한다.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에서 ‘오은의 옹기종기’ 코너 진행도 맡고 있다. 시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니다. 풍부한 표정, 꽤 큰 키, 그리고 쉴 새 없는 수다. 이 사교성 좋은 시인의 인상은 이렇다.
“시를 쓰고 났더니 기진맥진했어요. 그런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 (시 쓰기를) 오랫동안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시인으로서의 이력을 시작했을 때를 돌아봤다. 재수할 때 독서실에서 답답한 마음을 적은 줄글을 형이 가져다 투고했고, 문예지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그가 “등단이 뭔가요?”라고 물었다는 데뷔기다.
서울대와 KAIST 대학원이라는 ‘고스펙’으로 주목도 많이 받았지만 ‘시를 계속 쓸까’라는 주변의 의구심도 적잖았다. 사회학도(학부)였다가 문화기술 전공자(대학원)로, 빅데이터 회사에서 3년여 일하다가 문화기획자로 나선 최근까지 그는 세 권의 시집을 쌓았다. 주변 의혹을 털어냈음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 시가 무엇인지도 상기시켰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인데 시를 10년 훌쩍 넘게 쓰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만큼 제게 중요한 거죠.”
그렇게 시가 커다란 의미를 갖지만, 그는 시인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인이란 ‘상태(status)’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싱글’의 상태인 것처럼. 제가 마음먹으면, 관심 있는 다른 게 생기면 다른 걸 할 것 같아요. 빅데이터 회사에서 한창 일에 빠져 있을 땐 시를 안 쓰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웃음)”
시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듯 시인으로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21세기형 시인이 서 있는 지점을 확인시켜주는 말이었다.
그런 그에게 문학이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인은 “저는 겁이 많아 여행보다는 산책을 좋아합니다”라는, 개인적 취향으로 시작되는 답을 들려줬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걸 두고 ‘어제랑 달라졌어’라고만 말하는 게 아니라, 풍경을 다르게 보는 방식,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 자신만의 시각을 갖도록 해주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삶이 날마다 비슷하게 지나가는 듯해도 실은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을 찾아냄으로써 천편일률적인 삶에 생기를 불어넣도록 해주는 게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라면서, “내가 쓰는 시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움을 갖는 것이고자 분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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