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휴일 때문이다. 노동절, 대체휴무일(어린이날), 석가탄신일 등. 족족 쉴 수 있는 직장이라면 크게 문제없겠지만 나만 해도 그런 직장에 다니질 않는다. 더구나 기자들은 일요일 근무도 하기 때문에 번갈아 쉬어도 5월 한 달간 최소 나흘 이상 휴일근무가 발생한다.
그럴 때 여기저기 맡길 곳을 기웃거려야 하는 사람은 결국 엄마다. 애들 아빠는 가정적이고 육아를 많이 하긴 하지만 아이 숙제를 챙기고, 맡길 사람을 찾고, 어린이집에 연락하는 ‘디테일’은 늘 나의 몫이다.
‘엄마, 혹시 X, XX, XX일 아이들 봐주실 수 있어요?’ ‘○○야, XX일 애들 봐줄 수 있을까?’ 엄마와 동생에게 연락을 돌리고, 해당일 학원 등 일정을 고지하는 데만 반나절이 간다. 아이가 셋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날 애들 봐 달라’로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침밥은 미역국과 반찬, 오전엔 10회 입장권을 끊어놓은 △△키즈카페에서 2시간 놀리고, 인근 마트에서 점심을 먹인 뒤, 집에 데리고 와 둘째와 셋째는 낮잠을 재우고, 첫째는 수영학원을 보내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일정표를 짜 제시해야 한다. 공연이나 행사가 있다면 표도 미리 예매해놔야 한다.
물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방법도 있다. 어린이집은 휴무일에도 부모가 신청하면 예비교사를 두고 아이를 받도록 돼있다. 아주 급할 때는 아이를 맡긴다. 하지만 친정엄마나 동생 손이 비는 날이면 가급적 보내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의 어린이집 선생님도 나만한 자녀들이 있는 직장맘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대체휴무일이었던 7일에도 8일자 신문 때문에 근무를 해야 했다. 친정엄마에게 자세한 일정을 고지한 뒤 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걸로 그날 육아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자리 잡고 컴퓨터를 켜기 무섭게 친정엄마에게서 문자가 이어졌다. ‘둘째가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뭐 먹일 약 없냐?’ ‘셋째가 무슨 장난감을 찾아달라는데 그게 어디 있니?’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뭘 사달라는데 사줘도 될까?’
오후 되고 연락이 좀 뜸해지나 싶었는데 3시 반쯤 다시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사 마감을 얼마 안 남긴 시각이었다. 둘째와 셋째에게 TV 만화를 틀어주고 잠깐 첫째 수영학원을 데려다주러 나왔는데 첫째가 “할머니 나 수영하는 거 보고 가라”며 고집을 피우고 있단 내용이었다. 결국 기사 쓰다 말고 휴대전화에 있는 집 CCTV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야 했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첫째를 설득하는 동안 집에 있는 아이들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다. CCTV에 음성지원 기능이 있어 간간히 “얘들아, 엄마야. 할머니 곧 오실 거야” “○○아, TV 좀 더 뒤로 가서 보렴” 하고 떠들며 시간을 끌었다. 이게 회사 근무인지, 원거리 육아인지. 결국 기사 마감에 늦고 말았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안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맘들이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한 직장맘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아이를 맡겨야 해 어버이날 어버이께 불효하게 된다”고.
공휴일을 맘 놓고 반길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맘 놓고 쓰는 휴가, 짧은 노동시간, 유연근무 같은 게 보장 안 되는 직장이 태반이다. 나라고 안 쉬고 싶겠나. 이렇게 날씨도 좋고 미세먼지도 없는데.
그래도 쉴 수 있는 휴일이면 좀 낫지 않을까. 사실 휴일에도 ‘맘(mom)’이 ‘맘(心)’ 편히 쉴 수 없는 게 가정의 달인 5월이다. 가족모임이나 어린이집 행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 5월 일정표엔 주말까지 빈칸이 없다. 5~6일은 시댁 방문, 12~13일은 어린이집 행사와 친정 식사, 19일에는 또 다른 어린이집 행사가 이어지고 26일엔 친척모임이 있다. 더구나 어린이집 행사가 열리는 토요일에는 남편이 일을 한다. 나 혼자 부른 배에 아이들 셋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중노동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5월, 가정이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근무 와중에도 어린이날 선물을 고를 때면 아이들이 좋아할 생각에 그저 즐거운 것처럼.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12일 비 예보가 떠서 어린이집 행사 참석이 취소됐단다. ‘와, 쉬어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그럼 애들 데리고 어딜 가지?’ 하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별 수 없는 ‘엄마 DNA’에 스스로 혀를 끌끌 찼다. 하긴 5월의 남은 일요일과 공휴일, 함께 해줄 수 없는 만큼 함께 하는 날엔 열과 성을 다해 놀아줘야지 않겠나. 이렇게 직장맘의 5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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