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트레킹에서 산행 둘째 날은 설렘보다는 걱정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첫날 캠핑을 마친 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일행들이 던진 말이 “오늘이 데드 패스(Dad pass) 넘는 날이지?” 일행들을 긴장에 떨게 한 그 패스의 정식 명칭은 ‘데드우먼스 패스(Dead Woman’s pass)‘다. 멀리서 보면 마치 죽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듯 그곳을 오를 때에는 산깨나 올라봤다는 사람들도 죽을듯한 고통을 호소하기에, 줄여서 그냥 데드 패스라고 부른다.
보통 고산 등반을 할 때 하루 평균 600m 고도를 올리는데, 데드 패스를 오를 때에는 하루 만에 1300m가 상승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등반을 앞둔 사람들이 한왕용 대장에게 걱정 섞인 질문들을 쏟아낸다. “제 건강 상태면 혹시 낙오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서 낙오한 사람들 많아요?” 늘 그렇듯 한 대장의 답은 명료하다. “제가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제가 낙오할 판입니다.” 그 한마디로 말문이 막힌다.
긴장은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모든 사고는 방심에서 온다. 긴장한 일행은 물도 많이 마시고 서두르지 않으며 스스로 안전한 산행을 진행한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오르고 쉬기를 반복하다보니 드디어 패스 1km 전! 저 멀리 데드 패스가 보인다. 숨을 아무리 몰아쉬어도 호흡은 가쁘고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이제 체면을 버릴 차례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며 두 손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20m 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함성을 듣는 순간 남은 20m가 한없이 멀게 느껴지면서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든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이상하게도 고산(高山)은 정상만 도착하면 고통이 사라진다. 방금 전까지 온몸을 엄습하던 고통은 모두 사라지고 올랐다는 기쁨만 충만하다.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카메라 앞에서 점프 포즈까지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인간의 몸은 결국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겁을 먹으면 한없이 위축 되고 몸을 믿고 던지면 활짝 펴지는 것이다.
걷는 것조차 힘든 이곳에 잉카인들은 그 무거운 돌을 나르고 다듬어서 이토록 웅장한 마을을 건설했다. 잉카인들의 정신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사에 남을 문명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위대함에 박수를 보내고 그 얼을 배우고자 오늘 이 산에 오른다. 존재 자체로 희망이기에 세계인들이 잉카트레킹을 최고로 꼽고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순탄했던 기억보다는 고통스러웠던 일이 많다. 살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데드패스를 넘었다. 대부분의 고통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고통의 원인을 찾고자 하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고통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따지다보면 억울하단 생각뿐이다. 그래서 나는 근본적으로 고통은 신이 부여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오해는 인생이 장밋빛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경험상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인생은 크게 12마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10마디는 고통의 상황이고 2마디 정도가 축복의 상황이다. 10번의 고통이 찾아들면 행복한 순간은 2번 정도 된다. 그러니 고통의 상황을 마주치면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OK” “참고 견디고 가자!” 하며 말이다. 어쩌겠는가. 신이 내게 준 숙제인 것을. 그러다가 가끔 축복의 상황을 만나면 “Thank you” “누리고 즐기자” 하면 된다. 축복이 있다는 게 어딘가. 어떤 이는 인생의 초반에 축복을 맛보고 어떤 이는 인생의 후반에 축복을 만나게 된다고 확신하다. 내 인생에 봄날은 언젠가는 온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인생은 “OK” 아니면 “Thank you”라고….
데드패스를 넘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 대장에게 이야기했다. 한 대장 왈,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었네요. 왜 이리 두통이 심한 건지.” 그저 두통만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넘었단다. 도인(道人)은 인생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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