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피와 씨앗’은 공연 내내 보기 편한 장면보다 불편한 장면이 더 많다. 남자 주인공의 온몸이 양의 피로 물들거나, 배가 갈라진 죽은 양의 사체 소품이 관객의 눈앞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장면 등이 그렇다. 캐릭터들이 다소 불안하고 거친 감정선을 지닌 걸 이해하더라도, 일부 배우들의 감정선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치를 갖는 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타적 행동인가, 누가 이타주의자인가.’
이야기의 큰 줄기는 장기 이식을 놓고 벌이는 가족 간의 갈등이다. 아내를 죽인 죄로 12년째 복역 중인 아이작은 신장병으로 투병하는 딸 어텀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출소해 어머니 소피아의 집에 머문다. 아이작은 어텀에게 신장을 주라고 강요하는 소피아와 처형 바이올렛, 진심을 알 수 없는 어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어텀의 생일날, 귓속말로 진심을 전하는 어텀의 한마디에 아이작은 신장 기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수의사인 소피아는 아이작을 약물 주사로 기절시켜 강제로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작품은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 도덕과 상식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은 전인철 연출가는 카메라를 활용해 무대를 둘로 나눴다. 어텀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은 관객이 볼 수 없는 무대 뒤로 분리시킨 뒤, 어텀의 연기를 카메라로 촬영해 무대 위 화면으로 송출한다. 무대의 확장이란 점에서는 신선하지만 영상이 남발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6월 2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SPACE111, 1만∼3만 원. 02-708-5001 ★★☆(★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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