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확해야 산다” 교열-사전편집자의 책상 엿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9일 03시 00분


◇뉴욕은 교열 중/메리 노리스 지음/김영준 옮김/280쪽·1만5000원/마음산책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코리 스탬퍼 지음/박다솜 옮김/388쪽·1만6500원·윌북

일반인들은 ‘틀릴 수도 있지’ 하고 넘기지만, 정확한 단어와 철자, 문장부호의 사용은 이들의 명예이자 자존심이다. 수십 년간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고 살아가는 교열자와 사전 편찬자의 이야기는 정의와 품사, 발음기호와 문장부호들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게끔 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반인들은 ‘틀릴 수도 있지’ 하고 넘기지만, 정확한 단어와 철자, 문장부호의 사용은 이들의 명예이자 자존심이다. 수십 년간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고 살아가는 교열자와 사전 편찬자의 이야기는 정의와 품사, 발음기호와 문장부호들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게끔 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구두점과 맞춤법에 명예를 건 교열자와 단어 하나를 손보는 데 몇 달을 매달리며 황홀경에 빠지는 사전 편찬자. 단어, 문장과 씨름하는 것을 평생의 업이자 명예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출간됐다.

‘뉴욕은 교열 중’은 ‘뉴요커’에서 35년 넘게 일한 책임 교열자가 교정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담과 문장, 문법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 책이다. 마침표, 쉼표 하나 그냥 넘기지 않는 저자의 별칭은 ‘콤마퀸’. 이 회사에만 있는 오케이어(Ok‘er)란 직책을 맡고 있다. 기계적인 교열 업무를 넘어 인쇄 직전까지 원고를 완벽하게 가다듬는 자리다.

사람들은 교열자를 ‘하이픈으로 찌르거나 콤마 한 상자를 강제로 먹일 것 같은 마녀(?)’로 여기거나 작가가 되려다 실패해 출판업 주변부에서 사사건건 시비 거는 괴짜로 여기기도 하지만 저자는 정확한 교정에 늘 최선을 다해 임한다. 유명 작가, 편집자들과 단어나 철자 하나의 교정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신경전이나 사소한 인용 오류까지 잡아낸 저자의 철저함에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해버린 미국 유명 작가 필립 로스의 제안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언론사는 표기법에 관해 회사별로 규칙을 두는데 ‘뉴요커’의 경우 ‘웹스터’ 사전을 기준으로 한다. 자연히 저자의 교열 에피소드에서 ‘웹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회사에서 마치 ‘성서’처럼 집착하는 이 사전의 정체가 궁금해 편찬자 노어 웹스터 전기를 찾아보기도 하고 실제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사무실을 탐방한 후기도 소개한다.

재밌게도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가 바로 이 ‘웹스터’의 스프링필드 사무실에서 사전을 편찬하는 편집자가 쓴 책이다. 어릴 때부터 언어의 신비에 매료됐던 저자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전을 활용했다. 혈거인(troglodyte), 허풍쟁이(cacafuego)처럼 친구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단어를 찾아 면전에서 조용히 날려줬다는 것.

대학 진학 후에도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 셰익스피어를 넘나들며 단어 탐험을 계속하던 저자는 결국 웹스터에서 사전 편집 일을 시작한다. “언어의 잡초 밭에 수시로 걸려 넘어지고, 한 항목을 머리 뜯으며 검토하다 종국엔 자기가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복잡하고 치밀하다. ‘우주가 꺼질 때까지 완벽한 침묵’ 속에서 노동하지만 그만큼의 노고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저자는 새뮤얼 존슨의 말을 인용해 “사전 편찬자들은 무해한 노역자”라고 정의한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문장부호 하나, 단어 하나 매만지는 데 온 하루를 바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것 같다. 투덜대면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을 놓지 않는 유쾌한 인생관, 빼어난 유머감각까지 비슷하다. 미국 저자들이라 영어 예시가 많긴 하지만 방대한 단어와 문장부호의 세계를 위트 있게 탐험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뉴욕은 교열 중#네리 노리스#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코리 스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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