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67)를 만난 종로구 호텔 라운지의 창밖으로 안개비 풍경이 호수처럼 다가왔다. ‘Romance’ ‘Lake Louise’의 투명하고 환상적인 선율로 이름난 구라모토는 올해 한국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한국시장에 처음 소개된 1998년 앨범 ‘회상(Reminiscence)’ 이후 구라모토 열기는 지금껏 식지 않았다. 모든 한국 공연이 매진됐고 음반은 150만 장 이상 팔렸다. 구라모토는 “한국 팬 여러분 덕에 건강하게 좋은 연주를 해왔다. 깊이 감사드린다”며 머리 숙여 인사부터 했다.
한국 데뷔 20년을 기념해 구라모토는 신작 제목을 아예 ‘회상2(Reminiscence II)’라 지었다(17일 발매). “인생을 돌아보되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첫 곡 ‘Cordiality(진심)’는 사 장조이지만 검은 건반(파#)을 전혀 쓰지 않고 작곡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치밀한 구라모토 식 작법이다. 칠순을 앞둔 베테랑이 새로운 스타일에도 도전했다. “‘Beautiful Memories(추억은 주마등처럼)’는 ‘A-B-C-D-E-A-B-C…’의 형식으로 멜로디를 계속 변화시켜 주마등이 스치는 듯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Whereabouts of Love(그리고 어떤 느낌으로 사랑은…)’는 사랑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하향 진행의 선율로 표현했고요. 기존 곡들에 비하면 좀 낯설 수 있지만 들을수록 맛을 느끼실 거라 믿습니다.”
구라모토는 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 석사 출신이다. 최근 알파고 등장, AI(인공지능)의 작곡 실험에 대해 과학도 출신 예술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구라모토보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AI가 써내는 날이 곧 올 것인가. “AI가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계산이 빠른 것뿐입니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에 관해 얘기해보죠. 그 물길을 예측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진정 대단한 것은 대자연, 대우주예요. 계산 없이도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잖아요. 새는 태어나서 계산하지 않고 날지 않습니까?”
구라모토는 “계산과 작곡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면서 “인간이 연주를 하고 인간이 듣는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애수 어린 선율을 뽑아내는 구라모토이지만 “내 일상은 회사원 같다”며 웃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작곡, 편곡에 몰두합니다. 제게는 평범한 보통의 일입니다.”
구라모토는 먼 훗날 자신의 장례식장에 자신의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있거든요.”
유키 구라모토의 순회공연 ‘Beautiful Memories’는 2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4만∼10만 원)에 이어 부산, 울산, 경남 창원, 경기 부천, 서울 노원구로 31일까지 이어진다.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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