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잉카트레킹을 마치고, 남미까지 날아온 시간과 경비에 대해 ‘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에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있는 소금호수와 볼칸산에 가기로 했다. 볼리비아는 남미 국가 가운데 드물게 엄격한 비자를 요구한다. 쿠스코에 있는 볼리비아 영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러 갔다. 영사관 앞은 여러 국가의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업무를 보는 사람은 단 두 명, 부영사관과 직원뿐이다. 거기에 느린 업무 처리로 한나절을 고스란히 허비했다.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일로 곤란을 겪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여행의 일부다. 즐기며 기다리는 중에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지난 여정을 공유하며 즐거움을 만들었다. 서로 그동안 다녀온 여행 무용담을 이야기하는데 잉카트레킹은 단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보통은 마추픽추 당일 여행이기 때문이다. 3박 4일의 여정을 허풍을 섞어 자랑하고 다른 여행자들의 여정도 듣는 사이 우리 차례가 돼 귀한 비자를 받아들었다.
쿠스코에서 2시간 만에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 도착했다.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1시간 정도 걸려 우유니 공항에 도착하니 밤이 깊었다. 우유니의 고도가 3600m이지만 잉카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우리 일행은 고도로 인한 불편함에서 완전히 해방돼 있었다. 우유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관광객을 위한 호텔 건물만 약간의 규모를 자랑할 뿐 대부분의 집들은 단층에 허름하고 초라하다.
아침 일찍 소금호수를 향해 출발했다. 5분 만에 도시를 벗어나니 끝없는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막을 쉼 없이 달려 6시간 만에 소금호수에 도착했다. 우유니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소금호수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는 오산이었다. 사막은 1시간 정도만 즐길만하고 그 이후는 지겹고 몸이 뒤틀리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자다 깨다 수다 떨고 또 자는 중에 드디어 소금 사막이 눈앞에 드러났다. 꿈속인 줄 알았다. 이제까지 달려온 사막만큼이나 넓은 소금호수가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어제 비가 온 덕에 소금호수의 일부가 빗물에 살짝 잠겨 하늘을 반사시켰다. 소금호수 위로 보이는 또 하나의 하늘.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지구의 거울’이다.
소금호수 위를 지프차로 1시간 넘게 달려 호수 한가운데로 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 삼매경에 들어갔다. 사람을 찍어도 산을 찍어도 하얀 호수 바닥에 반사 돼 두 개의 실체로 나왔다. 신(神)이 만들어놓은 이 사막 한가운데 에덴동산이 있었다.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호수에 석양이 떨어졌다. 지는 해도 두 개였다. 마냥 신기한 이 호수에서 다 큰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뛰어 놀았다.
다음날, 소금호수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었다. 소금호수와 이어지는 볼칸산에 오르기 위해 아침부터 길을 서둘렀다. 6시간 걸려 다시 우유니로 돌아가 밤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볼칸산을 오르는데 첫 걸음부터 숨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호수가 이미 고도 4000m다. 산을 오르니 4500m는 금방이었다. 잉카트레킹의 4200m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폐는 호흡으로 들어오는 산소량을 알고 있었다.
산 위에서 보는 소금호수는 전혀 다른 장관이었다. 호텔 주인 말을 빌리면 대부분 여행객이 호수만 보고 갈뿐 산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산악인 한왕용 대장이 함께 하는데 산을 두고 그냥 지나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볼칸 산에 올라 또 다른 우유니 사막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잉카트레킹과 우유니 사막 여행, 남미 여행의 진수를 맛봤다. 신이 만들어놓은 자연의 비경을 접하려면 팔다리와 심장이 고생을 좀 해야 한다. 몸은 힘들지만 가장 아름다운 자연 앞에 마주서는 일은 삶의 의미를 원점으로 돌려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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