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비빔밥을 잘하는 식당은 대부분 산을 끼고 생겨난다. 주인장도 산이 좋아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사람이 좋아 식당을 열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산을 떠다 밥그릇에 오롯이 담아낸 산채비빔밥. 야생에서 채취한 취나물과 당귀 잎, 오가피 잎, 다래 순, 두릅, 고사리, 머위 잎 등을 밥에 쓱쓱 비벼 먹다 보면 산에 오른 것처럼 기운이 넘치고 입맛이 돈다. 더덕이나 우엉 같은 뿌리채소는 쌉싸래한 향에 아삭한 식감이 좋고 미세먼지에 지친 호흡기를 보듬어 준다. 산이 푸짐하게 재료를 내어주니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 인심도 후하다. 5월이 지나면 신선한 산나물은 자취를 감추고 묵나물이 올라오니 지금이야말로 절정의 산채비빔밥을 맛볼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다.
산채의 고수와 하수는 밥 짓기에서 갈린다. 하수들은 쌀과 나물을 넣고 펄펄 끓인 돌솥밥을 자랑하지만 고수들은 밥 지을 때 절대로 산채를 넣지 않는다. 고온의 수증기에 약성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우선 쌀을 불리는 시점에 채소 효소를 넣고 소화가 잘되도록 전분을 분해시킨다. 밥이 완성된 뒤 일단 불을 끄고 채소를 올려 뜸을 들인다. 이렇게 지어내야 싱그러운 산의 향기가 밥알에 스며 약성은 올라가고 특유의 식감도 살아난다.
식당의 손님 맞을 준비는 장 담그는 일로 시작한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라 당연히 콩 작황에 좋고 청량한 습도가 발효에 적당하다. 주인장은 메주를 띄워 된장과 고추장을 마련하며 간장은 짜지 않은 염도로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찬으로 내보낼 장아찌 준비는 1년간 지속된다. 충분히 삭힌 돼지감자, 초석잠, 우엉 초절임은 말랑말랑 젤리 같아서 뜨끈한 밥에 올리면 감칠맛이 그만이다. 보글보글 끓여주는 된장국은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애호박과 두부가 몽글몽글 떠오르고 청양고추의 칼칼함도 스민다. 밥에 넣고 쓱쓱 비비면 마지막 남은 밥 한 톨까지 바리 공양 하듯 다 먹게 된다.
서울 서초구 ‘꼴더덕꼴더덕’은 강원 정선에 2만 평의 산을 가지고 있는 주인장의 식당이다. 직접 재배한 5년산 더덕을 서울로 올려 음식으로 내온다. 더덕 효소로 지은 백세밥은 사포닌 성분을 최대로 끌어올린 연구의 결실이며 정선의 산채와 껍질째 조리한 통더덕 튀김을 푸짐하게 제공한다. 인천 강화도 ‘마니산산채’는 마니산에서 채취한 싱싱한 산나물에 20여 가지 약초 반찬이 함께 나온다. 강황을 넣고 현미, 보리쌀, 조, 백미, 귀리 등을 넣어 지은 밥은 소화가 잘되며 직접 담근 장으로 끓이는 된장찌개는 시골 할머니 댁의 구수한 손맛이다. 충남 청양의 ‘칠갑산맛집’은 칠갑산에서 채취한 산채를 ‘슴슴하게’ 무쳐 솥밥과 함께 내는데 청양산 콩으로 직접 띄운 청국장이 일품이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꼴더덕꼴더덕: 서울 서초구 효령로 256. 백세밥상 1만8000원. 02-3471-5550
○ 마니산산채: 인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182. 약선산채 1만1000원. 032-937-4293
○ 칠갑산맛집: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119-39. 나물비빔정식 8000원. 041-943-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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