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유 방언으로 그려낸 제주 사람들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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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제주방송 드라마 ‘어멍의 바당’… 지역 방언 기반으로 한 최초의 장편
출연진 전원이 제주 지역 연극인

KBS제주방송총국의 장편 드라마 ‘어멍의 바당’ 촬영 현장. 등장인물들이 제주 고유의 방언으로 대사를 하는 첫 드라마다. KBS제주방송총국 제공
KBS제주방송총국의 장편 드라마 ‘어멍의 바당’ 촬영 현장. 등장인물들이 제주 고유의 방언으로 대사를 하는 첫 드라마다. KBS제주방송총국 제공

“맨도롱 또똣할 때 호로록 드릅쌉써(기분 좋게 따뜻할 때 얼른 마시세요).” “솖은 독새기고추룩 맨들락허다(삶은 달걀처럼 매끈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워스모어대 데이비드 해리슨 교수는 “향후 100년 안에 현존 언어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제주어도 그중 하나다. 2011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직전에 해당하는 ‘소멸위기언어 4단계’로 지정했다. KBS제주방송총국에서 제주어로 된 12부작 미니시리즈 ‘어멍의 바당’을 선보였다. 지역 방언을 기반으로 장편 드라마를 만든 건 ‘어멍의 바당’이 최초다.

주인공 강단은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일하는 방송기자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해녀지만 단은 해녀 문화를 싫어한다. 그런 그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를 취재하기 위해 고향을 다시 찾게 된다. 이 드라마는 ‘어머니의 바다(어멍의 바당)’를 찾은 단이 점차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 안에 제주어는 물론 해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주 비양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녹여냈다.

연출을 맡은 오수안 PD는 산업화 시기 표준어 정책의 영향으로 급격히 잊혀져 간 제주어를 보존하자는 취지로 ‘어멍의 바당’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는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은 제주 출신임에도 제주어를 말하고 듣지 못해 세대 간 단절까지 발생하는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언어는 많이 말하고 들릴 때 생명력을 갖는다는 생각으로 고집스럽게 모든 대사를 제주어로 처리했다. 제주 출신의 김선희 작가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주어로 대본을 썼다. 강단 역의 박은주 씨(31·여)는 “대본 리딩에 걸린 시간이 (표준어 대본의) 열 배는 되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출연진 전원은 제주 지역 연극인들이다. 단의 어머니 역을 맡은 정민자 씨(57)는 실제로 해녀의 딸이다. 그는 “해녀복을 입고 처음 바다에 들어간 날 ‘우리 엄마가 평생 우리를 위해 이렇게 숨을 참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연극 강사로 일하는 정 씨를 비롯해 모든 출연진은 감귤 농사, 낚시가게 운영 등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가운데 시간을 쪼개 촬영에 임했다. “우리의 이야기”라는 인식을 공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PD 두 명이서 드라마 연출까지 도맡아야 했다. 장비 또한 부족해 카메라 두 대로 모든 촬영을 해내야 했다. 대규모 인력과 제작비로 무장한 드라마들에 비해 영상의 만듦새는 떨어진다. 하지만 오 PD는 “‘서울 드라마’에는 없는 정감 가는 제주어와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환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소개했다. 지역 방송이지만 유튜브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전국에서 볼 수 있다. “어멍의 바당, 강 방 왕 고릅써(가서 보고 와서 말씀하세요)!”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방언#어멍의 바당#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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