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은 잘 모르겠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다. 그날 먹었던 음식이 돈가스였다. 코스 맨 처음에 나오는 옥수수크림수프, 모닝빵과 비슷한 빵과 돈가스 그리고 옆에 나온 마카로니감자샐러드, 사각으로 길게 썰어 놓은 단무지가 있던 큰 접시가 생각난다. 당시 돈가스는 얄팍하고 넓은 모양새였다. 엄밀히 말하면 넓게 펼쳐 저민 돼지고기 튀김이라 해야 될 것 같다.
어른이 돼 회사 생활을 하면서 유행처럼 생기던 일식돈가스 전문점에 자주 드나들게 됐다. 서양의 커틀릿(Cutlet)이 일본의 다양한 소스와 결합된 뒤 우리나라에 안착하게 됐다는 것도 돈가스를 즐기면서 알게 됐다.
그러다 10여 년 전 ‘간다(神田)’라는 도쿄의 오래된 지역의 작은 골목에 ‘혼고상점 응접실(本鄕商店応接室)’이라는 돈가스 전문점에 간 적이 있다. 식당 안에는 커다란 테이블 하나만 있었다. 테이블 안쪽은 주인 할머니가 음식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고, 바깥쪽은 손님이 앉아 음식을 먹는 방식이다. 최대 6명이 앉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아주 작은 식당이다. 정육점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돈가스 집을 하게 됐다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응접실이란 단어를 원하셨단다. 아마도 샐러리맨에게 집과 같은 푸근함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집은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돈가스를 만든다. 냉동실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꺼내 무시무시한 큰 칼로 두툼하게 자른다. 부드럽게 하기 위해 고기를 두드리고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아니, 볼 수밖에 없다. 말만 안 하지, 돈가스 요리 강의나 다름없다. 모든 게 ‘바로바로’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돈가스와 샌드위치가 합쳐진 ‘가쓰산도(カツサンド)’는 용어(카츠산도)까지 그대로 국내에 들어와 돈가스의 단면을 샌드위치에서 확인하며 먹게 됐다. 식빵 사이에 든 돈가스 살코기를 보면 튀김옷에 감춰진 고기를 상상하며 썰어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육감적인 군침이 돈다. 일본은 돈가스 외식이 1899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라는 식당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매우 길다. 그러다 화류계 여성들이 립스틱이 잘 묻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들었다는 가쓰산도는 도시락에 많이 활용된다. 최근 국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동네에서는 가쓰산도가 고급스럽게 변신했다. 고기 두께를 더욱 실감나게 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두꺼워지는 경향도 있다. 1965년부터 시작한 일본의 유명 돈가스 회사 ‘마이센(まい泉)’의 가쓰산도는 최근 한국의 인기 레스토랑 가쓰산도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할 정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