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날카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다진 자신의 ‘눈’으로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사람. 팝 칼럼니스트로 출발해 라디오 DJ를 거쳐 영화평론으로 주목받다,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한 방송인.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꾸준히 책을 펴내는 작가.
김태훈을 설명하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출발은 팝 전문가였지만 한때 TV에서 자주 모습을 비추면서 방송인으로 활약한 그가 최근 활동의 보폭을 줄이는 대신 ‘인터뷰어’라는 위치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과 사회를 향한 애정 어린 그의 시선이 최근 몇 년간 대담집 연작으로 이어진 가운데 최근 신작 ‘만들어진 질병’(블루페가수스 펴냄)을 내눴다. 2014년 문화예술인 10명과의 대담을 담은 ‘김태훈의 편견’을 시작으로 2015년 정치인 김부겸과의 대담집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를 통해 문화와 정치에 시선을 뒀던 그가 이번에는 의학으로 눈을 돌렸다.
● 왜 ‘인터뷰어’를 지향할까
김태훈은 ‘글’과 ‘말’로 대중과 소통해왔다. 하지만 최근 주력하는 길은 전문가에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의 위치다. 이번 책 ‘만들어진 질병’에 붙은 부제 역시 ‘현대의학을 관통하는 김태훈의 질문’이다.
그는 왜 말하는 대신 ‘묻는’ 사람이 됐을까.
김태훈은 “나 역시 정체성의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에 갖은 호기심을 어떻게 깊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왔다”며 “방송에서 가볍게 얘기하는 수준을 넘어 각 분야에 더 깊이 접근해 묻는 사람이 돼 보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문화예술 분야의 대담집으로 출발했다. 정치를 넘어 의학 인문서로 관심사가 확대되는 과정은 사실 자연스러웠다. 특히 2015년 내놓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의 대담은 “정치인과의 인터뷰는 꼭 정치전문가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시도였고, 상당한 반응도 이끌어냈다.
이번에 내놓은 ‘만들어진 질병’은 현대의학을 둘러싼 질병과 몸에 관한 궁금증과 의문, 근원적인 해결법을 담았다. 질문자인 김태훈이 묻고 3명의 의사와 1명의 트레이너가 답하는 식이다. 의학의 발전이 왜 우리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과 비판이 391쪽 분량에 빼곡히 담겼다.
김태훈과 인터뷰에 나선 전문가는 국내 비만 치료에 있어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는 박용우 박사(강북삼성병원)를 비롯해 국내 첫 자연치료의학 인증 전문의 서재걸 원장(포모나자연의원), 정신과 전문의 양재진 원장(진병원) 그리고 퍼스널 트레이너 임종필 대표(JP GYM)이다.
김태훈은 “우리 몸에 있어서 건강과 삶의 주권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시작한 기획”이라며 “내 신체에 대한 궁금증, 병의 근원과 해결에 대한 의문이 이번 인터뷰집의 출발”이라고 밝혔다.
‘만들어진 질병’은 스트레스를 통한 각종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에게 가장 흔한 비만과 우울증 그리고 암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다. 왜 정복되지 않고, 정복할 수 없는지에 대한 접근부터 시작한다. 전문 의학서가 아니란 점에서 책의 내용이 독자들의 폭넓은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강점이다.
박용우 교수는 ‘비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제대로 모르는 비만의 실체, 비만이 우리 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스트레스가 진짜 비만의 주범인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불러오는 악순환을 짚고, 살을 빼지 않고 몸을 회복시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재걸 원장의 인터뷰는 더 직접적이면서도 파격적이다.
현대의학은 왜 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치료에 집중하는지를 파고들면서 암 발병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씩 짚어간다. 항암치료의 빛과 그림자, 제약 산업에 주도권을 빼앗긴 현대의학의 이면도 들여다본다.
양재진 원장이 꺼내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문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최근 부쩍 증가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 개인은 물론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를 이끌어낸 책임은 ‘묻는 사람’ 김태훈이 맡았다. 그는 때로는 고통 받는 환자의 눈높이에서,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으로 질문을 쉼 없이 던진다. 이에 응하는 전문가들의 답변은 지금껏 어느 방송이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솔직하다.
● “1년간 의학서적에 파묻혀 살아…인터뷰어로서의 삶은 계속”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준비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김태훈은 “1년간 의학서적에 파묻혀 살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독가’인 그가 의학서를 파고드는 모습을 본 주변사람들은 ‘누가 보면 의대생인줄 알겠다’는 농담까지 던졌다.
“사실 TV프로그램에서도 의학 관련 정보는 넘친다. 그런데 왜 병이 생기고, 우리 몸의 시스템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살피기보다 ‘울금이 암에 좋다’, ‘블루베리는 항암에 좋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전달하지 않나. 그런 식의 접근으로 우리 몸은 건강해질 수 없다. 몸의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메커니즘을 알려주고 그 체계를 이해해야 병도 알고, 해결도 할 수 있다.”
전문가 4인과의 인터뷰인 만큼 ‘만들어진 질병’의 분량은 상당하다. 하지만 김태훈은 “1차 편집본은 더 많은 분량이었고 결국 3분의1 정도를 거둬내 지금의 완성본을 구성했다”며 “너무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빼고,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씩 물어가는 방식으로 채워나갔다”고 밝혔다.
대담집 외에도 앞서 3권의 칼럼집을 내놓았던 김태훈은 “쓰는 일보다 인터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터뷰를 하는 대상에게 내가 공부를 하고 왔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 내 질문의 수위에 따라 상대의 대답 수위도 달라진다. 그 과정이 가장 어렵다.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교수에게 질문하는 의대생 4학년 수준 정도는 돼 보자는 각오로 준비했다.”
아이디어 많은 김태훈은 ‘만들어진 질병’ 이후의 책 구상에도 한창이다.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이나 뇌 과학 등도 그가 주목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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