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문 경연을 듣다가, 과제곡으로 나온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1846∼1916)의 가곡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Non t‘amo piu)’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의 ‘안개(Nebbie)’의 전주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우울한 단음계 화음이 반복되는 점이 닮아서, 전주가 나오면 ‘이번엔 토스티일까 레스피기일까’ 하곤 했습니다. 물론 노래가 진행되면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토스티와 레스피기는 이탈리아인이고 한 세대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냈을까요? 두 사람의 관계를 오늘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에 대입해서 상상해 보았습니다.
토스티는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대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푸치니가 하녀의 음독자살로 스캔들에 휩싸이자 토스티는 자신의 거처를 푸치니의 임시 피난처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푸치니는 지휘자 토스카니니와 친구이면서 으르렁대는 사이였습니다.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대표작인 ‘라보엠’ ‘투란도트’의 초연을 지휘했지만 푸치니가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질타하곤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서자 파시스트를 혐오했던 토스카니니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가 파시스트 시위대에 둘러싸였을 때 레스피기는 ‘그는 애국자’라며 토스카니니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레스피기가 파시스트는 아니었지만 무솔리니가 그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토스티-푸치니-토스카니니-레스피기로 이어지는 일종의 ‘관계망’이 형성됩니다. 그 시절에 SNS가 존재했다면 어땠을까요? 댓글을 통해 “어, 토스티샘과 레스피기샘은 어떻게 아세요?” “푸치니 자네를 통해서 알게 됐지.” “푸치니샘과 레스피기샘은요?” “둘 다 토스카니니 친구라서.” 뭐 이런 대화가 오가진 않았을까요. 물론 상상입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이탈리아 음악으로 꾸미는 콘서트 ‘부오나 세라(저녁 인사)’를 12일 엽니다. ‘안개’를 비롯한 레스피기 작품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를 비롯한 토스티 작품 등을 연주합니다. 바리톤 방광식, 테너 강무림 씨 등이 특별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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