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어느 날 당신의 친구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낸다면? 대부분 조현병 혹은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 보기를 권하거나 덜컥 겁이 난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쓸지도 모른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환청=조현병’이라는 등식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것이다. 1938년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 박사가 환청을 조현병의 1급 증상 중 하나로 명명한 것이 이런 믿음으로 굳어졌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대중적 선입관에 반기를 든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도 실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한다고 주장한다. 조현병 환자의 75%가 환청을 경험하는 건 맞지만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전부 조현병에 걸린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내 안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과정이다. 타석에 들어선 야구선수가 “직구를 노리자”라고 중얼거린다면, 이는 그의 머릿속에 울린 “무슨 공이 들어올까?”라는 목소리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을 채우는 목소리는 용기를 주는 조력자로, 영감을 주는 여성인 뮤즈로, 계시를 주는 신으로 우리와 함께한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묻는다. “당신에게 말을 거는 그 목소리가 당신인가, 아니면 목소리와의 대화를 통해 끝없이 직조되는 것이 당신인가? 뭐가 됐든 간에 목소리가 멈추면,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저자는 조현병 환자, 어린이, 스포츠 선수, 소설가 등과의 다양한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문학, 철학, 신학을 유려하게 넘나든다. ‘내 목소리’와 ‘내 안의 목소리’, 그리고 ‘나’의 관계를 분석하는 복잡한 작업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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