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갇혀 살아도 손바닥만 한 화분을 키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록 식물을 곁에 두고 싶은 건 자연이 그리워서일까? 책 속 조경 풍경은 치밀한 설계의 산물이기에 첫눈엔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니 전문가들도 수천 년을 돌고 돌아 제자리,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저자는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교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 덕분에 20세기 이후 정원의 개념 자체에 의문을 가진 조경가와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풍부하다.
흥미로운 건 조경이 모더니즘 예술처럼 개념과 기하학으로 군더더기를 줄여 나간 순간들이다. 스위스 조경가 에른스트 크라머는 ‘좋은 형태’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제거하고 기본 요소인 연못, 잔디만을 활용해 ‘시인의 정원’을 만들었다. 생태주의에 관한 관심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정원의 개념도 탄생시켰다.
책은 최근부터 과거까지 역순으로 조경의 역사를 보여준다. 풍부한 배경 지식과 인문학적 설명이 곁들여져 조경 비평을 읽는 듯하다. 과거에 조경은 부유하고 특별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었다. 누구나 자연을 가까이 하고 즐기는 시대에 이르러,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인 시도를 보는 과정이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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