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부실은 지명이다.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에 있다. 저자가 꿈같은 유년기를 보낸 고향이기도 하다. 서울과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워싱턴 특파원까지 지냈지만 저자의 마음은 항상 저부실에 있었다. 이 232쪽짜리 시집에는 쪽마다 저자가 마음속에 간직해 온 고향에 대한 향수가 흙냄새처럼 배어 있다. 저자의 기억이 불러온 풍경들로 채워진 저부실은 물리적 공간을 초월한다. 그곳은 저자의 심적 안식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저부실의 잔잔한 풍경은 사회 현실의 순간과 마주치기도 한다. ‘향나무 들샘에 고이는 눈물(그날 중)’, ‘목련꽃이 바람길 위에 널브러져 있다/멍들고 일그러진 꽃잎들(꽃들은 어디로 중)’과 같은 전원적인 이미지로 저자는 사회의 아픔을 보듬는다. 사회의 풍경은 고스란히 고향의 풍경과 겹친다.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을 산책하는 여유에서는 삶의 황혼을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가 드러난다. ‘잘 가게’, ‘별이 떨어집니다’와 같은 시를 통해 곁을 떠난 사람들을 추억하고, 다가올 이별을 준비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삶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저자는 그의 ‘저부실’과 닮았다. 저자 남찬순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석사, 경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기자,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심의연구실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