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델핀 미누이 지음·임영신 옮김 / 244쪽·1만4000원·더숲
지옥이 실재한다면 이 같은 모습일까. 한 달에 600여 차례 폭격이 쏟아지고, 8년째 이어진 내전으로 35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곳. 중동의 심장부에 위치한 시리아의 현실이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7㎞가량 떨어진 다라야 지역은 내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리아 정부로부터 폭력적인 진압과 무차별적인 학살에 시달렸다. 정부의 도시 봉쇄로 식량과 의약품이 끊기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버렸다. 이전까지 25만 명이 넘던 주민은 병사 2000명을 포함해도 약 1만2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중에는 시리아 최고 명문대학인 다마스쿠스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기자를 꿈꾸던 청년 아흐마드 씨(26)가 있었다. 다라야에 남아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는 2013년 우연히 폐허로 변한 집터에서 수북하게 쌓인 책들을 발견했다. 책을 집어든 그는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을 느꼈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무너진 도시에서 책 수집에 나섰다.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 등 인기 소설부터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자기계발서까지. 귀퉁이가 잘려나간 책, 구겨진 책, 두꺼운 책 등 한 달 만에 무려 1만5000권을 모았다.
이들은 지식의 전율을 주민들과 함께 나눴다. 정부군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 한 허름한 지하실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것. 정부군에 발각될 것을 우려해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도 못했지만, 매일 25명 안팎의 주민들이 찾아왔다.
이 특별한 도서관의 존재는 프랑스 분쟁 지역 전문 기자인 저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연히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저자도 시리아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실제 현장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 대신 상태가 불안정해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인터넷 화상통화를 하며 이들이 책을 통해 내전의 상처를 극복한 2년간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했다.
그들에게 책이 준 가장 강력한 힘은 ‘치유’였다. 스물넷 젊은 나이에 총 한 번 들어본 적 없지만 내전에 참전하게 된 대학생 오마르 씨. 한 손에는 자동소총을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펼쳤다. 엔지니어가 되려는 자신의 꿈 대신 역사서를 탐독하며 마음의 상처를 위로받고,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시리아를 꿈꿨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정부의 폭탄 공격으로 2016년 7월 숨을 거뒀다.
생화학 무기 등 반인륜적인 공격을 퍼부은 시리아 정부의 만행으로 2016년 8월 결국 다라야 주민들은 모두 도시를 떠났다. 도서관 역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책을 통해 단단해진 이들은 시리아 곳곳으로 퍼져나가 조국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묵직하다 못해 처연한 역사의 현장. 책은 당장 무언가를 바꿔주진 않는다. 하지만 독서는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준다. 이 책은 이를 차고 넘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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