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이 예정된 것을 알고도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구월이 그런 사람입니다.”
‘미실’, ‘탄실’, ‘논개’ 등으로 유명한 김별아 소설가(49)는 14번째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해냄·1만4000원·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비 구월이 자신의 남편을 잔인하게 죽인 주인 김태길을 한양 한복판에서 살해한 사건을 추리 기법으로 썼다. 역사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존 작품들처럼 구월 역시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김 작가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6일 열린 간담회에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효종 즉위년인 1649년에 벌어졌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승정원일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한 39개 기록을 확인하며 단순한 살인 이상의 사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범인은 제목에서부터 공개됐지만 구월이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계획했는지, 조력자들과 어떻게 손잡게 됐는지 등이 형조 관원의 수사를 통해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어릴 때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이었던 그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내 패를 보여주지 않고 독자와 ‘밀당’하는 기분이었어요. 17세기 이후 조선은 급격히 보수화되면서 주인과 노비는 물론이고 남성과 여성, 적자와 서자 간 차별이 심화됐어요. 변화하는 사회에서 운명에 저항하는 개인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역사소설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현대의 삶은 너무 얄팍하잖아요. 역사는 삶을 두텁게 느낄 수 있게 하거든요. 독자들이 작품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 시대의 공기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년 넘게 소설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는 그는 이 시대 문학의 역할과 후배 작가들의 척박한 현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젊은 작가 40명 가운데 첫 책을 출간할 4명을 뽑는 심사에 참여했어요. 너무나 빛나는 작품들을 썼는데 출간 기회는 단 4명에게만 줄 수 있다니…. 피눈물 나는 심사였습니다.”
그는 작가들이 시대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며 한국 문학을 더 많이 읽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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