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명반을 프로듀싱한 크리스토퍼 올더는 “내 도전 과제는 항상 다음 음반”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올더 홈페이지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KBS교향악단이 텅 빈 객석과 마주한 채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상임 지휘자인 요엘 레비(68) 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이올린이 충분히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로 연주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에 레비가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의 유명 음반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퍼 올더(65)였다. 그와 e메일로 만났다. 올더는 “음반은 오롯이 연주자의 것”이라며 “프로듀서는 녹음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할 뿐 해석에 과도하게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작업에 참여한 KBS교향악단의 제728회 정기연주회 음반은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올해 말 발매될 예정이다.
음반 프로듀서는 ‘지휘자의 지휘자’로 불린다. 지휘자, 연주자와 소통하며 음반에 알맞은 소리를 이끌어내고 불필요한 소리는 걷어낸다. 올더는 1980년대부터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과 작업한 명프로듀서. 2008년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음반도 그의 작품이다.
영국 런던의 길드홀 음악학교를 나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에 다니던 그는 1980년 우연한 기회에 DG에서 테이프 에디터 보조 업무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일은 아바도의 눈에 띄면서 평생 직업이 됐다.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을 담당하던 프로듀서가 사망하자 아바도가 보조로 일하던 그를 후임으로 지목한 것.
“DG 측은 어리고 경험이 적은 나를 못미더워했지만 아바도가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음반 녹음 작업에 대한 질문에 제 나름대로 대답을 했는데 아바도가 이를 좋게 본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뜻밖의 좋은 기회를 얻게 됐죠.”
위 사진은 2009년 발매된 벨리니의 ‘캐풀렛가와 몬터규가’. 안나 네트렙코와 엘리나 가란차가 주연을 맡았다. 아래 사진은 2000년 발매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필하모닉이 협연했다. 크리스토퍼 올더 홈페이지
1986년 리코딩 엔지니어, 1989년 책임 프로듀서를 지냈다. 그는 현재 DG에서 독립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30여 년간 그래미상만 열 번 수상했다. 특히 말러에 조예가 깊어 아바도의 모든 말러 음반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빈필하모닉은 묵직하고 다채롭게, 베를린필하모닉은 우아하고 유려하게 말러를 빚어내죠. KBS교향악단은 말러에 어울리는 따듯한 음색을 지녔어요.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보여준 감정의 깊이에 감동받았습니다.”
프로듀서는 결과물을 얻기까지 연주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테이크(연속으로 녹음된 하나의 단위)를 반복한다. 거의 모든 클래식 연주곡의 총보를 숙지해야 하며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잖다. 완벽한 음반을 위해서는 ‘좋은 공연장, 준비된 오케스트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모두를 갖춘 환경은 드물다.
“음반 녹음은 실제 공연과 달리 반복 연주로 흠결을 줄일 수 있죠. 누군가에게 만족스러운 청각 경험을 선물하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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