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몇 장을 넘기며 쾌재를 불렀다. 잘 나가는 X들. 그 동안 배 아팠다. 딱히 대단치도 않아 보이건만. 근데 유명 경제학자가 그게 ‘운 빨’이라 해주다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게다가 미 코넬대 석좌교수인 이 양반, 거물 아닌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와 공동 집필한 ‘경제학’은 낯설다 치자. 2000년대 후반 국내에도 출간됐던 ‘승자독식사회’ ‘이코노미 씽킹’은 꽤 뜨거웠다. 식견 높은 학자가 글도 어찌나 재미난 지.
저자가 건네는 위로는 대략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실력주의’ 신화가 존재한다.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만들었다는 이 용어는 성공은 오로지 당사자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뤘다고 믿는 걸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에 슬쩍 태클을 건다. 정말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이뤄진 거냐고.
‘실력과 노력으로…’는 거기에 상당한 ‘행운’이 작용했다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도 그렇다. 물론 그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1960년대 귀하디귀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단말기가 있는 사립학교를 안 다녔다면 그런 성공이 가당키나 했을까. 심지어 게이츠는 처음엔 IBM의 MS-DOS 개발 의뢰를 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행운이 성과에 작은 영향만을 미치는데도 운이 좋지 않고서는 경쟁자가 많은 상황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행운은 필연적으로 임의성을 띠기 때문에 가장 능력 있는 경쟁자라고 해서 남보다 운까지 좋을 수는 없다. 둘째, 경쟁자 수가 많으면 재능 수준이 최고에 가까운 사람 또한 많기 마련이고, 그들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는 운마저 굉장히 좋을 수 있다.”
한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의 실패는 운이 나빴다고 “기꺼이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인다. 반면 성공은 행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흔하디흔한 ‘내로남불’이랄까. 그러다보니 사회가 가져다준 ‘복’에 감사할 줄 모른다.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이바지할 수 있어야 세상이 좀더 윤택해진다.
이 책은 읽다보면 다소 당황스럽다. 편한 술자리인 줄 알고 반바지 차림으로 갔더니, 정장을 갖춘 공식만찬이랄까. 슬렁슬렁 드러누워 읽다가 쭈뼛쭈뼛 자세를 고쳐 앉는다. 심지어 뒤로 갈수록 만찬마저도 아닌 학술 포럼이었다. 스포일러하고 싶진 않지만, ‘누진소득세’ 얘기까지 나올 땐 어쭙잖게 피라미드 조직에 끌려온 기분이다.
그래도, 이 피라미드 굉장히 설득력이 좋긴 하다. ‘자석 요’를 수십 장 사들고 나오게 생겼다. 중언부언이 있긴 한데, 그게 세뇌를 시킨다고나 할까. 특히 “행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금언은 새겨둘 만하다. 다만 괜스레 의심도 든다. 저자는 정말 이런 이상사회 도래를 확신하는 건가. 글은 명불허전인데, 뭔가 마지막 카드는 감춰놓은 듯한 이 찝찝함은 왜일까. 원제 ‘Success and Luck.’(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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