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매일 일에만 매달렸어요. 하지만 아프리카는 모든 게 여유롭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죠. 여기가 정말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더라고요.”
비영리 사단법인 ‘코아’ 고영희 대표(48)의 얼굴은 해맑았다. 2000년부터 자신과 가족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문 이유를 “아프리카가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아이들과 한국 문화를 날라다 주는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고 대표는 18일~3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 탄생(1918년 7월 18일)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스페이스호서에서 남아공 빈민촌 아이들의 그림, 편지 전시회를 열기 위해 내한한 터였다.
고 대표는 한국에서의 삶은 ‘일벌레’였다고 고백했다. 내일의 성과만 바라보다보니 놓친 게 많았다는 거다. 남편과 아이에게도 미안했고.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도착한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의 삶은 평온했다. 케이프타운 블루버그 화이트샌드 해변에 가족이 함게 앉아 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를 만끽했다. 그동안 TV에 나왔던 미개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고 대표는 “아프리카에 54개 국가가 있다. 그들은 다양한 색깔을 갖고 산다. 우리의 검은 흑인 이미지와는 다르다. 배고픈 이들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2001년 남편과 불의의 사고로 사별한 뒤 딸 서니(1998년 생)와 함께 남아공에 정착했다. 그는 전시 중개 기획자로 활동하며 틈틈이 지인이 선물한 카메라로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남아공 빈민촌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하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항상 웃고, 가난한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죠.”
그가 남아공 빈민촌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 들어간 칼리처는 우범지대였다. 총소리가 들리고 허름한 판자집이 즐비했지만 그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일부 범죄집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실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서민들이었다는 게 고 대표의 얘기다.
“처음엔 아이들과 그냥 놀았어요. 백설공주 얘기해주고 피카소 그림 보여주고 하면서요. 가난해서 바다도 못가본 아이들은 신기해했죠. 그렇게 그림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칼리처에서 처음 그림 교육에 참가한 아이들은 20명 남짓이었지만 갈수록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고 대표는 일주일에 세 번 씩 방과후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너만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남과 비슷한 그림을 그려오면 냉정하게 ¤어버리기도 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고 대표가 비영리 사단법인 ‘코아(한국어로 코리아+아프리카, 영어로는 컬러 오브 아프리카’를 설립한 건 아프리카 빈민촌에 미술품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한국과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문화로 교류하는 세상을 꿈꾼 덕분이다. 이번 만델라 탄생 전시회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시회의 주제는 ‘Halala tata mandela(축하해요 아버지 만델라)’. 남아공에서 만델라는 여전히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다. 그의 그림을 한국에서도 공감하자는 취지다.
무료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만델라 그리기 이벤트도 열린다. 이 중 50점을 골라 남아공에서 개최할 예정인 전시회에 남아공 아이들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행사장에선 만델라 무료 엽서도 받을 수 있다.
고 대표는 “사랑은 동그라미 같다”고 했다. 나로 시작한 사랑이 돌고 돈다는 것. 처음에 미술을 가르친 아이들이 나중에 다시 돌아와 고 대표를 챙겨주는 건 바로 사랑이 둥글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는 “평소 아이들에게 ‘너만의 하나뿐인 그림을 그리라’고 말해준다”며 “그림을 잘 그린 아이와 열심히 그리는 아이 모두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됐지만 미소는 남아공 아이들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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