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중에서)
장마 끝에 맑게 갠 날씨를 선사한 16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느 유명한 산사 입구처럼 피서를 온 인파로 북적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없는 이곳은 취락시설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요한 산사(山寺)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
부석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찰의 정중앙에 위치한 범종루와 안양루 등 일렬로 배치돼 있는 누각들이다. 이날 동행한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겹치는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각 밑의 계단을 지나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누하(樓下)진입’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찰의 아래쪽에선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부석사의 전경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얼굴을 내비친다.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앞에 위치한 안양루에 올라서면 봉황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의 수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안양루의 벽면에는 이곳을 방문하거나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
이곳에서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이 남긴 수려한 시 한 수를 감상하는 여유를 즐겨 보자.
안양루 뒤편에는 부석사의 자랑이자 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이 위치한다. 특징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배흘림기둥. 가운데가 볼록하게 보이는 시선의 왜곡 현상을 활용해 배 부분을 더 두껍게 강조하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당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유입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 기법을 동아시아의 사찰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시공간이 무한하다는 무량수전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무량수전 바로 옆에는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와 그를 흠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애틋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다. 선묘낭자는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깨닫고, 대신 용이 돼 신라로 귀국하는 스님을 수호한다. 이후 사찰을 짓기 위해 토착세력과 갈등을 겪던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뜬 바위(부석)로 변해 반대 세력을 무찔러 준 것이다. 실제로 바위의 밑부분은 떠있는 것처럼 가파르게 꺾여 있다.
의상대사는 한국 불교의 화엄종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양루 아래쪽에 위치한 ‘장경각’은 고려 시대 때 화엄사상의 내용을 적어 놓은 ‘화엄경판’ 500여 판을 보관 중이다. 마침 이날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경판을 인쇄하는 인경(印經)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 냄새 가득한 곳에서 경판을 인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불교 수행자의 흔적이 내 눈앞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부석사의 숨은 매력은 사찰 동쪽 끝에 위치한 식당이다. 미리 예약한 일부 방문객에 한해 허용되는 식당은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건강한 음식과 풍경을 함께 즐기고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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