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로만 구성된 경영학과 18학번 단체 채팅방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 품평회가 열렸다. 채아(홍서영)는 수업 중 채팅을 하며 키득거리는 남학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뜯으며 응징한다. 이어 ‘니들이 동기냐? 성추행범이지’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학내에 붙인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뉴스에 자주 나온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떠오른다.
네이버TV,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12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12부작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 에피소드 중 일부다. 이 드라마는 새내기 신혜(김다예), 채아 등이 캠퍼스 내 부조리를 경험하며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올해 초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등 젠더 이슈가 커지면서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는 20, 30대 여성이라면 공감할 생활 속 성폭력을 다뤘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남자 선배가 은근히 손을 만지작거린다.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성이 음란한 손길을 뻗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혜는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남성의 요청을 거절하자 “왜 여지를 줬느냐”며 면박을 당한다. 드라마 말미에는 ‘이상하다 느꼈으면 그건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다른 사람 품평하기 전에 본인부터 제대로 파악하길’ 등 각 에피소드에서 강조한 메시지를 애니메이션과 함께 한 줄로 정리한다.
이우탁 CJ ENM 스튜디오온스타일팀장은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은 20, 30대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도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높이기 위해서다. 남성이 변심한 옛 애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해 대학가 미투, 페미니스트인 여자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상담하는 ‘내 여자친구는 페미니스트’ 등 최근 청년들 사이의 화젯거리가 드라마 주제가 됐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사전 취재에 공을 들였다. 익명으로 성폭력 경험을 토로하는 ‘대나무숲’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지고 여성들이 참여하는 ‘혜화역 시위’도 참고했다. 김기윤 PD는 “사전 인터뷰를 한 대학생만 100여 명”이라며 “실제 학생들의 피해는 드라마보다 수위가 높았다”고 말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학내 성폭력을 다룰 때는 실제 성폭력 폭로가 나온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촬영했다. ‘성폭력 교수 OUT’ 등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의 연구실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현상도 반영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댓글방은 피해 폭로의 장이 된다. 시청자들이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라며 본인의 경험을 토로하는 것. 악플이 달릴 때도 있다. 김 PD는 “민감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다뤄야 하는 이야기”라며 “시즌2에서는 직장 내 젠더 이슈를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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