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삽화가 담긴 신간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한길사·33만 원)는 가로 28.5㎝, 세로 42.3㎝다. 크기와 무게 탓에 들고 움직이려면 두 손 뿐 아니라 아랫배까지 써서 받치는 게 편하다.
전자책이 갈수록 일상이 되어가는 시대이고, 요즘엔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문고본 출판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어마하게 ‘큰 책’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장서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귀스타브…’는 왼쪽 페이지에는 구약·신약 성경의 구절이, 오른쪽엔 관련 장면이 그려진 목판화가 인쇄돼 있다. 판화 241점은 극명한 명암대비와 인물의 역동적인 제스처가 특징이다. 강렬한 인상은 시원한 크기의 도판으로 극대화된다. 책 제작에는 부피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는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상철 고려대 교수는 “귀스타브 도레는 책의 대량생산으로 값싼 삽화가 등장하던 시절 역으로 삽화를 독립적인 회화작품으로 승화시킨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설명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활자 미디어의 아름다움, 아날로그 책의 물성(物性)과 미학을 새롭게 구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책을 필두로 ‘큰 책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출간한 이탈리아 요리책 ‘실버 스푼’(세미콜론)도 1504쪽에 두께는 68㎜, 무게가 3.2㎏이 넘는다. 9만9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지금까지 3000부 이상 팔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명한 요리 사진이 식욕을 자극하는데, 뒷장의 사진이 비쳐 보이지 않는 재질의 종이를 사용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탈리아 요리가 거의 모두 담겨있다고 할만한 ‘바이블’같은 책”이라며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질 거라 내다보긴 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2쇄를 찍었다”고 말했다.
‘크고 두꺼운 책’을 만들려면 그만큼 노력도 많이 들어가기 마련. 2015년 7월 첫 권이 나온 뒤 최근 4권으로 완간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시공사·각 권 8만 원)은 모두 합치면 4024쪽에 이른다. 5명이 나눠 번역했는데 한 권을 옮기는데 3년이 걸리기도 했다. 번역 뒤 편집만 1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고 한다.
엄청난 두께에도 반응은 꾸준하다. 1~3권 모두 중쇄(重刷)했고, 1권은 5쇄가 나왔다. 이경주 시공사 편집자는 “공들이지 않은 책이라는 건 없겠지만, 특히 이 책은 독자들이 오래 소장하며 읽기를 원할 거라고 보고 양장본 커버나 세트 케이스 등의 고급화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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