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저녁 열린 제15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공연은 단단한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나듯 전개됐다. 한 명에서 둘, 셋으로 연주자가 늘어나는 방식의 구성은 새로 부임한 젊은 예술감독 손열음의 명민함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한편, ‘넘치는 기대에 부응하느라 과식하진 않겠다’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
먼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닝펑이 유려한 기교를 앞세운 연주로 초반부터 관중을 압도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탄 밀스타인의 ‘파가니니아나’. 솔로 무대가 끝난 뒤 닝은 불가리아 출신 스베틀린 루세프와 함께 바이올린 듀엣 무대를 가졌고, 이어서 피아니스트 안티 시랄라, 첼리스트 레오나르트 엘셴브로이히와 실내악 삼중주를 선보였다. 한 명의 솔로이스트가 동료들과의 협연에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끝은 어디(Never Enough)’란 부제가 붙은 이날 공연은 지금까지 대관령음악제에서 연주된 적이 없는 곡 중 클래식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실내악곡으로 꾸몄다. 1부에서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C장조’와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 제2번 C장조’가, 2부에서는 클로드 드뷔시의 ‘백과 흑’,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실내악 사중주가 연주됐다. 대중적이기보다는 예술가로서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들이다. 손열음 예술감독은 “제가 연주자 출신이라 그런지 연주자들이 하고 싶은 곡을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3부를 장식한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는 연주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예술가들이 원하는 곡으로 구성된 무대는 자칫 중구난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30분이 넘는 곡이 세 개에다 전체 러닝타임은 3시간 30분이었다. 그러나 이날 관객들은 개성이 강한 연주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선보이는 하모니에 빠져들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국내외 실내악의 숨은 보물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무대였다”고 말했다.
올해 대관령음악제에는 닝펑, 프레디 켐프, 막심 리사노프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성 강한 해외 솔로이스트들과 첼리스트 김두민,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등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단원들이 초청됐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해 온 손 감독과 클라라 주미 강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들의 경험을 활용한 결과다.
독주 무대 일색인 국내에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27일 저녁 첫 공연을 앞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단원들을 주요 멤버로 하여 구성됐다. 25일과 26일 낮에는 러시아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이끄는 가운데 이들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올해 대관령음악제 타이틀은 ‘멈추어, 묻다’로, 손 감독이 직접 지었다. 손 감독은 개막공연 전 “클래식 음악은 인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며 “이 근원적 질문이야말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2004년 시작한 국내 유일의 여름음악제가 앞으로 어떤 색깔을 지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일단 기대 이상이다. 오케스트라, 리사이틀 등 다양한 공연은 다음 달 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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