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영화에서 청년은 연민과 불안, 나아가 현실 도피를 꿈꾸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9일 개봉한 영화 ‘박화영’의 10대들은 온갖 욕설로 악다구니를 쓰며 “나 아직 여기 있거든!”이라고 소리 지른다. 멋지게 포장해도 모자랄 판에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환 감독(39)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이 감독은 충무로 한 극장에서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에 거의 매일 참석하고 있다. 그는 “이틀 전엔 좌석이 꽉 찼는데 출연 배우의 팬이 많았다”며 “영화를 여섯 번까지 본 사람도 있는데 세 번째쯤부터 좋아하는 배우가 아닌 영화를 봐주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런 주제를 택한 계기는 뭘까. 감독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맺는 기형적 관계에서 인간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고교생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 받은 소녀가 자신이 받지 못한 감정을 베풀며 존재를 증명하려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10대의 언어와 행동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려고 오랫동안 취재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보고 ‘박화영’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던데, 경찰서 등에서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충격적”이라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믿지 않고 적당히 허구를 섞어야 진짜라 믿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아카데미 ‘명필름랩’에서 영화를 완성했다. ‘박화영’의 시나리오 초고를 본 심재명, 이은 대표는 “이 영화를 왜 만들려고 하냐”고 물었단다. 이 감독은 “그때 ‘관객을 내보내려고 만들었다’고 대답했더니 심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이 대표는 ‘아유, 그러면 안 되고, 관객이 봐야지’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작품이 채택되자 주변에선 “이렇게 저돌적인 영화를 명필름에서?”라는 의아한 반응도 나왔다. 이 감독은 “독립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열악한데 노하우와 인프라를 갖춘 명필름 덕분에 작업에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박화영’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최근 독일 뮌헨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이 감독은 “작품을 본 한 독일 배우가 피상적인 폭력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과 부모 자식에 관한 영화’라고 있는 그대로 봐줘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현재 촬영하는 박정범 감독의 신작 ‘이 세상에 없는’에 연기자로 참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속칭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가족처럼 떼거리를 이룬 것)’을 다룬 작품이라 캐릭터에 맞춰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했다. 그는 “5년째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계속하니 정말 힘들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박화영’은 개봉관도 잡기 힘든 실정이지만 누군가에겐 초석이 될 영화를 발견한다는 마음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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