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만든 ‘가족 이야기’라 더 각별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4일 03시 00분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윌리 로먼 역 전무송 씨



“윌리 인(in)!”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 연출가의 사인이 떨어지자 묵직한 가방을 든 배우 전무송 씨(77·윌리 로먼 역)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린다(박순천)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서 밀러(1915∼2005) 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실제 공연처럼 이어서 연습하는 중이었다. 실적, 경기 걱정에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찬 예순 셋의 세일즈맨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뷔 55년 차인 전 씨는 수차례 윌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은 더 각별하다고 했다. 원로 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늘푸른연극제’의 개막작인 데다, 그의 실제 가족이 총출동해 함께 극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위 김진만 씨가 연출가, 딸 전현아 씨가 예술감독이고 아들 비프 역은 실제 아들인 배우 전진우 씨가 맡았다. 그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실제 ‘가족극’으로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실에 모인 배우 전무송의 가족.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무송, 예술감독 전현아(딸), 비프 역을 맡은 배우 전진우(아들), 연출가 김진만(사위), 아이 목소리로 출연하는 김태윤(외손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실에 모인 배우 전무송의 가족.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무송, 예술감독 전현아(딸), 비프 역을 맡은 배우 전진우(아들), 연출가 김진만(사위), 아이 목소리로 출연하는 김태윤(외손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개막작을 맡은 소회는….

“연극인은 연극할 때 제일 행복한 법이다. 소위 ‘원로’라 불리는 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락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언젠가 저 선배들처럼 되겠지’ 하고 느끼게끔 하고 싶다.”

―윌리 역은 7번째다. 얼마나 각별한 작품인가.

“창작극도 좋지만 옛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가(1931∼2008)가 1984년에 처음 윌리 로먼 역을 맡겼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해 ‘이 작품 한 번만 더 하자’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했다. 후배들이 만들어준 자리인 만큼 올해 10주기를 맞은 선생님을 기리며 이 작품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이 내 마지막 ‘세일즈맨의 죽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40대에 연기한 윌리와 70대인 지금의 윌리는 어떻게 다른가.

“첫 무대 때 대본을 읽어보니 내 아버지와 윌리가 똑같더라. 자식에 대한 그 대단한 바람, 자부심…. 당시에는 아버지에 대해 상상하며 연기했다. 지금은 연기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 아들(비프 역)도 마흔이 다 돼 연극한다고 저러고 있고.(웃음) 이 역을 많이 해봐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알면 표현은 그냥 나온다. 아서 밀러가 원했던 윌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기대하나.

“세상 아버지들 다 똑같은 마음 아닌가.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에 대한 바람, 갈등, 실망…. 다들 엉킨 것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결국 욕심 때문이다. 모든 윌리 같은 아버지, 비프 같은 아들들이 이 작품을 보고 당신들이 원하는 진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들, 딸, 사위가 합심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소감은….

“실은 아내에게 ‘우리 가문을 일으켜 줘’라고 고백했다. 몸에 뭐가 올라오는 것 같아 사랑한단 말은 차마 못 하고…. 지금 보니 이게 가문이지 뭔가. 이런 걸 원했던 것 같다.”

―공연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가길 바라나.

“생색내기 지원뿐인데 그것만 바라보는 처지도 불쌍하다. 예술가가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다. 자기 목적을 위해 비열하게 예술가들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을 앞서 가는 게 예술이다.”

17∼26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3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일즈맨의 죽음#윌리 로먼#전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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