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세기 음악계에서 다빈치적인 만능인이었습니다. 지휘자였고, 작곡가였으며, 음악이론가였죠. 가장 미국적인 클래식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토요일인 25일이 그의 100번째 생일이군요. 바로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입니다.
번스타인의 등장은 혜성과 같았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던 브루노 발터가 앓아눕자 25세 나이에 대타로 투입되어 대성공을 거두었죠. 1958∼1969년엔 뉴욕 필 상임지휘자로 이 악단의 황금기를 이뤄냈습니다.
작곡가로서도 그는 교향곡 세 곡과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등을 발표하면서 비평계와 대중의 사랑을 함께 누렸죠. 1954년부터 TV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음악의 매력을 전파하는 ‘구루(Guru)’로서도 그의 존재감은 각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진보정치 활동에 열정을 쏟았고,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나는 보수주의자’라는 문건에 서명했으며, ‘미국 태생 지휘 스타’라는 상징성에 주목한 정보기관은 그를 블랙리스트에서 지웠습니다.
그가 작곡한 음악극 ‘캔디드’는 철학자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가 원작입니다. ‘캉디드’의 부제는 ‘낙관주의’이지만 주인공은 ‘세상은 악으로 가득하고, 낙원이라는 것도 별 게 아니었다’고 토로합니다. 왜 이런 ‘낙관주의’가 나왔을까요? 볼테르는 실제 낙관주의 사상가들을 조롱하고 세상의 불합리를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사상 검증을 통과해야 했던 번스타인도 그 씁쓸함을 담고자 했을 것입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0월 12,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가 지휘하는 번스타인의 ‘캔디드’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합니다.
사족. 번스타인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았을까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그는 베를린으로 날아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했습니다. 이때 그는 4악장 ‘환희에의 찬가’를 ‘자유에의 찬가’로 바꾸어 부르도록 주문했습니다. 세상이 자유의 품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그는 마음에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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