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승선교’ 너머 찬란한 천년 불국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3일 03시 00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를 가다]<6> 9세기 창건 순천 선암사

선암사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언급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해우소와 3, 4월이면 짙은 향기가 온 사찰을 뒤덮는 매화나무 등 독특한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선암사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언급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해우소와 3, 4월이면 짙은 향기가 온 사찰을 뒤덮는 매화나무 등 독특한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한국의 산사는 대부분 개울을 끼고 있다. 수려한 경관을 더하지만 통행은 불편해 교량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는 그중에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다리를 입구에서 만날 수 있다. 무지개를 닮은 아치교인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다. 아치 사이로 2층 누각인 강선루가 보이는데 이 전경이 계곡물에 고스란히 비쳐 신비로운 느낌마저 선사한다.

승선교 아래에는 용 모양 장식이 걸려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용의 입 주변에 동전 3개가 걸려 있다. 1713년 호암 스님이 공사를 마무리하고 남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훗날 수리비용에 사용하라며 남겼다 한다. 청렴결백한 스님의 뜻이 통한 걸까. 300여 년간 다리는 튼튼하게 유지됐고, 동전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선루를 지나 조계산 자락으로 더 올라가면 일주문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찰 경내로 들어선다. 일주문 뒤쪽 현판에는 ‘해천사(海川寺)’라는 글씨가 있다. 선암사는 1761∼1824년 이 이름으로 불렸다. 9세기 창건 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찰 전체가 무너져 내릴 만큼 큰 화재를 여러 차례 겪다 보니 바다와 강을 뜻하는 ‘해천’이란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선암사 곳곳에 ‘수(水)’ ‘해(海)’와 같은 글자가 새겨진 전각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덕분인지 19세기부터는 큰불이 나지 않았고, 6·25전쟁과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 등 현대사의 굴곡진 위기도 이겨내며 지금껏 전통 사찰의 원형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선암사 승선교.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선암사 승선교.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선암사는 특히 조선 왕실의 사랑을 받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한동안 왕자를 얻지 못해 애가 탄 적이 있다. 정조의 부탁으로 눌암 대사가 선암사의 원통전 건물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기적같이 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순조는 즉위 이듬해인 1801년 원통전에 큰 복을 낳게 한 밭이란 뜻의 ‘대복전(大福田)’ 현판을 하사했다. 지금도 순조의 글씨가 남아있는 원통전은 사찰인데도 조선 왕실의 건축 양식인 정(丁)자형으로 지어져 있다.

선암사의 대웅전 현판에는 ‘김조순’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 뛰어난 명필가라 하더라도 뒤편에 이름을 남긴다는 점에서 불손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의 정점에 서 있던 김조순(1765∼1832)은 일부러 이름을 내걸었다. 당시 억불정책으로 각종 수탈과 핍박의 대상이었던 불교의 현실에서 선암사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최고 권력자의 이름을 통해 지방 관료들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김조순의 배려였던 셈이다.

선암사 뒤편 산자락에는 약 3만3000m²(약 1만평)에 이르는 야생 차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재래 차밭이다. 지금도 선암사 스님들이 찻잎을 직접 따 9번을 덖는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다. 은은하면서도 구수한 맛으로, 떫은맛은 느껴지지 않는 우리나라 전통 차의 원형을 느껴볼 수 있다.

순천=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승선교#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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