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제는 정체성 자체가 동전의 양면처럼 독신의 직분과 연결돼 있다. 이것에 실패하면 사제로 살아갈 수 없다. 그 엄격함과 사회적 잣대를 지켜내야 한다.”
최근 만난 가르멜수도회 한국관구장인 윤주현 신부의 말이다. 그는 3월 대구대교구 김준년 신부와 ‘사제직―신학과 영성’(사진)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이탈리아 영성신학의 대가인 마리오 카프리올리 신부(2009년 선종)의 저서를 번역한 것이다. 사제가 지켜야 할 순명과 독신의 의미를 비롯해 직무와 영성, 비전 등을 다뤄 사제학 교과서로 불릴 만하다.
윤 신부는 올해 2월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제의 성추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정말로 있어서는 안 될 죄송한 일”이라며 “한국 교회 쇄신의 출발점은 사제의 쇄신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모두 노력하고 있지만 좋은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학대에 10명이 입학하면 3∼5명이 사제품을 받고, 은퇴 무렵에는 1, 2명이 남는다. 그래서 사제로 죽을 수 있으면 은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신학뿐 아니라 영성(靈性)과 인성 교육이 더 강화돼야 한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가르멜수도회는 가톨릭 내에서 영성적 전통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박해가 사라지자 수도자들이 이스라엘 북부 가르멜산에 은거하면서 영성을 더 심화시킨 것이 수도회의 기원이 됐다.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소화 테레사, 20세기 초반 여성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이 가르멜 출신 성인이다. 여성 수도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봉쇄수도원에서 생활한다.
지난해 관구장에 취임한 윤 신부는 가르멜수도회 본부의 역할뿐 아니라 영성센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과 출판이 중심 사업이다. 올해 초부터 2년 과정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된 프로그램이다. 수도회는 또 ‘가르멜 총서’ ‘가르멜의 산책’ ‘가르멜의 향기’ 등 연구서에서 대중적인 책까지 다양한 책들을 내고 있다.
가르멜 영성은 가톨릭이 세속화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샘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신부의 설명이 흥미롭다. “가르멜은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노력한다. 기도를 통해 성성(聖性)에 이르는 게 목표인데, 불교로 치면 수행의 마지막 단계 해탈이다. 이런 가르멜의 영성적인 보화들을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전하는 게 우리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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