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이지영-소프라노 윤인숙, 1월 별세 황병기 선생 추모 공연
18, 19일 이틀간 국립극장서 열려
고 황병기 선생(1936∼2018)의 문제작 ‘미궁’이 최초로 다른 연주자 손에서 재탄생한다.
올해 1월 별세한 가야금 명인을 기리는 공연 ‘2018 마스터피스―황병기’를 통해서다. 개막곡 ‘미궁’은 특히나 다른 이의 손을 탄 적이 없다. ‘침향무’ ‘숲’ ‘비단길’ 등 황 선생의 다른 곡이 가야금의 새 고전으로 후학들에 의해 연주되는 동안, 유독 즉흥성과 기괴함이 유별난 ‘미궁’만은 1975년 초연 이래 작곡자인 황 선생이 직접 연주했다.
무거운 짐을 넘겨받은 가야금연주가 이지영 서울대 국악과 교수(53)와 윤인숙 소프라노(71)를 1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연주법도 독특하거니와 악보조차 없어 대단한 도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공연 기획 과정에서 “‘미궁’이라면 이 교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국악계에서 한목소리로 나왔다. 당사자는 한숨부터 내쉰다.
“국립극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당황했어요. 연주해본 적도, 가르침 받아본 적도 없는 곡이었으니까요. ‘가르쳐달라고 졸라볼걸’ ‘공연하실 때 자세히 볼걸’ ‘아, 무엇보다 생전에 잘해 드릴걸’….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악보가 없으니 희미한 유튜브 동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퍼즐 맞추듯 연주법을 추적했다. 한 줄 한 줄 조율부터 파악했다. ‘활대로 긁고 거문고 술대로 두드리고, 가야금을 처음엔 왼쪽 무릎에 놓았다 오른쪽으로 옮긴다…’ 보이고 들리는 대로 적어갔다. 볼수록 들을수록 새로웠다. 마지막 난제는 장구채를 줄 밑에 넣어 빠르게 긁어내는 것. ‘아, 채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네…!’
윤인숙 소프라노는 목소리를 맡는다. 원작에서 무용가 홍신자 씨가 담당한 부분이다. 울다 웃다 신문기사를 읽다 신음하다 끝내 반야심경을 읊는 소리는 현대인의 고독과 광기, 해탈을 그린 드라마다. 인간 소리와 귀곡성을 오가는 절창이자 열연이다. 윤 씨는 1999년부터 지난해 마지막 공연까지 황 선생의 ‘미궁’ 파트너였다.
“처음 ‘미궁’을 공연할 때는 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왜 퍼질러서 울지 못하냐’ ‘인생 살면서 제대로 운 적이 없느냐’…. 황 선생께 하도 야단을 맞아서 무대에서 어머니 돌아가신 기억을 떠올렸는데 그만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멈추지 못했죠.”
2016년 서울 용산구 스튜디오콘크리트에서 공연할 때는 객석까지 울음이 전염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윤이상 작곡가(1917∼1995)의 제자인 윤 씨는 황 선생이 19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남측 단장을 맡는 데 중개자 역할도 했다.
“윤 선생과 황 선생 모두 민족의 소리를 바탕으로 세계인을 공감케 한다는 예술론을 갖고 계셨어요. ‘미궁’에도 그 영향이 있지요.”
윤 씨는 올해 ‘한국민족성악연합회’를 창설해 남북 성악가가 머리를 맞대는 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초연 당시 관객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부터 자정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담까지. 발표 후 43년이 지났지만 국내 음악계에 단일곡으로 ‘미궁’만 한 충격파를 던진 작품은 아직 없다.
공연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18일 오후 8시에는 ‘미궁’을 필두로 ‘침향무’ ‘비단길’ 등 실내악 작품이, 19일 오후 8시에는 가야금 협주곡 ‘밤의 소리’ 등 관현악 작품이 연주된다. 4만, 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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