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새벽 잠 방해하는 소리에…베란다서 구경하다 눈 뜬 테니스 인생 32년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5일 0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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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목동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는 송선순 씨.
11일 서울 목동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는 송선순 씨.
환갑을 눈앞에 둔 송선순 씨(58)는 테니스를 치며 ‘2030세대’ 못지않은 활기찬 인생을 즐기고 있다. 주 3회에서 5회 코트를 누비며 공을 치다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기분이다. 그의 테니스 인생은 올해로 32년째로 접어들었다.

“매번 가족 모임 때면 시누이가 테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1987년이었다. 마침 새로 이사 간 아파트 바로 앞에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새벽 다섯 시부터 레슨 하는 코치의 목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매일 새벽 선잠 깨 10층 베란다에서 레슨 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똑같은 스윙으로 스트로크하고 발리 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워 보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나도 한번 해볼까’해서 시작하게 됐다.”

태어나 처음해보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무엇보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테니스를 치며 내 이름을 찾았다. 어느 주부나 결혼 후에는 삶의 양상이 달라진다. 본인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엄마, 누구의 며느리로 불린다. 하지만 테니스를 시작하고각종 대회 출전하면서부터 ‘송선순’이라는 내 이름 석자로 불리게 됐다.”

테니스가 그에게 가져다 준 혜택은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테니스로 인해 나를 찾았고 내 기질을 알게 됐다. 결혼 후 집안의 대소사는 거의 시어른이나 남편에 의해 결정이 됐다. 라켓을 든 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다. 테니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후련했다. 또 내가 그렇게 테니스를 잘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 놀랐다. 시어른 모시는 상황이라 남들처럼 충분히 테니스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반대급부의 위력은 대단했다. 시어른 세끼 식사를 차려 드려야 하는 상황인지라 작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연습 방법과 게임 방법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송선순 씨 제공
송선순 씨 제공
송 씨는 20년 넘게 대회에 출전했고 40회가 넘게 우승했다. 여자 동호인대회는 단식보다는 복식이나 혼합복식을 많이 한다. 송 씨도 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주로 우승했다. 마지막으로 대회에 출전한 2008년 연말 랭킹 ‘톱10’을 유지했다. 그는 “10년 넘게 톱10을 유지했다”고 했다.

국내 아마추어 테니스에는 대회가 수백 개가 넘는다. (사)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http://www.ikata.org/), (사)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http://kato.or.kr/), 국민생활체육테니스(대한테니스협회·http://tennis.sportal.or.kr/) 3개 단체에서 개최하는 전국대회는 물론 각종 지방 자치단체에서 여는 대회까지 엄청나게 많다. 송 씨는 KATA와 KATO, 국민생활체육테니스 3대 리그에서 연말 랭킹 톱10에 들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동호인테니스도 세계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처럼 각종 대회 결과 점수를 합산해 연말에 랭킹을 발표한다. 우승에서 각 등위별 점수, 예선 통과 등까지 세세하게 점수를 준다.”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자신감은 계속 상승했다.

“뭐든 목표를 세우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체력이 강해져 건강을 얻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990년대 컴퓨터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지금은 일반화 됐지만 그 당시 낯설었던 컴퓨터를 공부해 네띠앙에 HTML로 내가 가입한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네띠앙이 없어지는 바람에 홈페이지 자료가 다 날아갔지만 그때 컴퓨터 공부한 덕분에 지금까지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테니스를 시작해 얻은 성취감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컸다.

“이길 때의 기쁨은 뭐라 형용할 수 없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전략을 짜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땡볕에서 퇴역한 장교와 3시간 씩 단식을 치며 체력을 기르기도 했다. 그렇게 연구하고 훈련해서 우승컵을 거머쥘 땐 이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테니스로 인해 다양한 인적네트워크도 형성했다.

“테니스를 하면서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전국의 많은 분들과 교류 할 수 있었다. 테니스도 웬만큼 하니 각종 행사에 많이 참여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욱 풍성한 인맥을 맺게 됐다.”

송 씨는 테니스를 시작할 때부터 가입한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을 비롯해 금천구직장어머니모임, 서울시의사회, 비트로팀 등을 오가며 테니스를 치고 있다. 특히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에서는 제35회를 시작으로 36, 37, 40, 41회까지 5회나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왕성한 활약을 펼쳤다.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 송선순 씨 제공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 송선순 씨 제공
1975년 창단된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은 1976년 서울시어머니테니스대회 개최를 시작해 1990년부터 전국 어머니들이 참가할 수 있는 전국대회로 확대해 개최하는 등 ‘어머니 테니스 활성화’에 힘쓰고 기여한 단체다. 회원 63명으로 최고령 82세부터 최연소 37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확보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서울 목동테니스장에서 함께 모여 테니스를 친다. 송 씨는 초창기에는 거의 매일 테니스를 쳤지만 지금은 주 3~5회를 친다.

“2008년까지 대회 출전을 하다 2009년부터는 출전하지 않았다. 2008년부터 월간지인 테니스코리아 객원기자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승부가 걸려 있는 미묘한 상황에서 동호인 기자로 쓸데없는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어서다. 코트에 서면 즐거울 때도 많으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사막 같을 때가 많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 최정상에서 내려놓았다.”

테니스코리아 객원기자도 테니스를 즐기다 송 씨를 눈여겨본 편집장의 권유로 하게 됐다. 테니스 인적네트워크의 산물인 셈이다. 송 씨는 각종 아마투어 대회를 쫓아다니며 테니스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해외여행 중에는 세계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을 취재하기도 했다.

테니스코리아에 글을 쓰면서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회적 생명’도 얻었다.

“유명 동호인들을 인터뷰해 기사화하면서 재능 기부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사는 법을 고민하며 사회에 재능을 기부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한 7년 됐다. 처음엔 중학생들에게 테니스를 지도했는데 학생들 얼굴은 안보이고 엉덩이만 보였다. 장난치느라 테니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서울 경기 지역에 거부하지 않는 대학은 다 가서 지도했다.”

대학생 재능기부 비트로팀. 송선순 씨 제공
대학생 재능기부 비트로팀. 송선순 씨 제공
대학생들은 잘 따라했다. 명문 서울대만 3번 갔다. 그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며 테니스를 치고 있어 기쁘단다. 그렇게 테니스를 치며 테니스활성화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22년째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을 후원하고 있는 (주)학산 비트로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비트로는 국내 순수 토종 스포츠 브랜드다. 송 씨는 비트로의 협찬을 받아 재능기부 때 학생들에게 각종 물품을 제공하고 대회도 공짜로 열어주고 있다. 재능 기부는 12명으로 구성된 ‘비트로팀’이란 이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테니스를 함께 치던 남편을 갑자기 잃은 우한도 있었다.

“2008년 독립문배 한마음 가족 테니스대외에서 남편과 함께 출전해 우승했다. 사실 우리는 예선 탈락했는데 패자조에서 우승을 하게 됐다. 패자조는 패한 사람끼리 다시 조를 짜서 하는 경기인데 남편과 호흡을 맞췄다. 힘들긴 했지만 40여개 우승 트로피 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모셔두고 있다. 그 대회 얼마 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 추억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테니스가 있어 아픔을 줄일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도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2008년부터 친구와 매년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최근엔 당구도 배우기 시작했다.

“당구가 생활체육이 되면서 당구장이 건전해졌다. 당구는 여성 시니어들 사이에 치매예방으로 각광받는 스포츠가 됐다. 그런데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 테니스 보다 더 섬세한 운동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목표가 당구(4구) 300인데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구 400을 치는 아들이 듣더니 웃더라. 노안(시력) 때문에 아마도 힘들 거라고. 그러나 꾸준히 도전해 볼 생각이다. 테니스를 통해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맨 처음 아파트 동호회에서 최고, 구에서 최고, 서울에서 최고, 전국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결국 그렇게 됐다. 스포츠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결실을 가져다준다.”

송 씨는 요즘 손자 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테니스를 절대 빼놓을 순 없다.

“과거에는 우승을 위해 테니스를 쳤다면 지금은 건강을 위해 친다. 그 땐 모든 게 우승을 위해 스케줄을 짰다. 몸 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모든 것을 대회 출전에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만을 위해 테니스를 친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지 않나.”

테니스 라켓을 들고 코트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선 행복이란 두 글자를 느낄 수 있었다.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 발리, 스매싱…. 활기찬 그의 플레이 모습에서 환갑을 앞둔 나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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