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마다 심란한 선산 관리… 처가 벌초는 예법에 없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30·끝>명절 앞두고 커지는 벌초 고민


 
■ 조부-증조부… 어느 분까지 해야 하나요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긴 연휴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심란합니다. 벌초 때문입니다.

올해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유언에 따라 선산에 모셨습니다. 지난 주 추석을 앞두고 생전 처음 벌초를 하러 갔죠. 차로 4시간을 달려 선산에 도착했는데, 풀이 어찌나 우거졌는지 산소로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더군요. 겨우겨우 풀숲을 헤집고 올라가서는 경악했어요. 아버지 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이름 모를 조상님들 묘가 온통 잡초더미로 엉망이더라고요. 도저히 혼자 벌초할 규모가 아니었어요.

외동이라 형제도 없고 연락할 친척도 마땅치 않아 막막했습니다. 벌초 대행업체에 문의하니 우리 선산 규모면 100만 원 이상 든다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묘만 겨우 벌초하고 내려왔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어요. 저는 어디까지 벌초를 해야 예를 다하는 걸까요? 내년 추석이 벌써 걱정입니다.
 
■ 사위는 처가 묘 벌초하면 안되나

추석 때면 집집마다 벌초 고민이 적지 않죠? 민속문화 전문가이자, 유교 전문가이자, 장례 전문가이자, 벌초 전문가인 저 ‘추성묘’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벌초가 무엇인지 봅시다. 사실 벌초는 틀린 용어입니다. 성묘가 맞아요. ‘살필 성(省)’에 ‘무덤 묘(墓)’,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뜻이죠. 여름엔 풀도 많이 자라고 비도 많이 오잖아요. 추석 전에 친지들이 모여 조상의 묘에 우거진 풀을 뽑고 무너진 흙을 정비하던 풍습에서 유래했죠. 효심을 표하고 가족 간 정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전통입니다.

문제는 저출산 핵가족으로 요즘은 어느 집이나 벌초할 자손이 적다는 점입니다. 친척들에게 연락해 함께 벌초할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만약 벌초 대행업체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이 추억을 가진 조부모나 증조부모 묘까지 벌초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조상님들도 그 마음은 이해하실 거예요.

딸만 있는 집은 걱정이 더 많죠? 얼마 전 제가 만난 주부 한정숙(가명·41) 씨는 벌초 문제로 남편과 한바탕하셨더군요. 남편에게 친정아버지 묘 벌초를 부탁했더니 남편이 “한국 문화에선 처가나 외가의 벌초는 안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는군요. 자신은 매년 남편 집 제사상을 차리는데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얄미운 것도 당연하죠.

더욱이 우리 문화에 ‘처가나 외가 벌초를 안 한다’는 룰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대충할 때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죠? 마음은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예전엔 처삼촌 벌초를 많이 했다는 방증입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처가살이 문화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문헌에도 퇴계 이황 선생이 장인어른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벌초 방식을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직장인 김정현(가명·36) 씨는 벌초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녹다운이 됐다더군요. 김 씨 어머니는 벌초 대행은 불효라며 “네가 안 하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벌초 날짜를 잡아 며느리랑 손주의 대동을 명했다는 겁니다. 이에 아내는 “벌도 있고 뱀도 있는 땡볕 산에 왜 세 살짜리를 데려가야 하느냐”며 버텼대요.

이런 갈등, 요즘 흔하죠. 이건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 부모님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지만 초보에게 벌초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초기가 워낙 무겁고 위험해 하루 종일 벌초를 하고 나면 다음 날 팔이 덜덜 떨려 숟가락질도 못해요. 벌에 쏘이는 사고도 많고요. 그래서 벌초 대행이 이제는 일반화됐어요. 지난해 농협·산림조합의 대행 건수만 5만5000건에 달해요. 5년 전의 2배예요. 사설 업체도 500곳이 넘어요.

벌초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이나 문중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해요. 선산 일부를 팔거나 돈을 모아 묘를 개장한 뒤 가족 납골당을 만들거나, 관리를 대신 해주는 공원묘지로 옮기는 거죠.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불효는 ‘묵뫼’(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묘)를 만드는 건데, 앞으로 상당수 묘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농촌에 젊은이가 없어 벌초 대행도 오래 못 가요.

앞으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잘 의논해 공원묘지 안에 가족 단위로 조성이 가능한 선산 형태의 장지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국토 관리의 숙제인 ‘무덤 산’이 줄어들어요. 화장(火葬) 문화가 일반화된 만큼 자기 집 화단이나 자투리 땅 등 가까운 곳을 장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차피 죽음은 삶의 일부니까요.

임우선 imsun@donga.com·유원모 기자
 
<도움말 주신 분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박복순 전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 △농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벌초대행업체 H사, M사
#추석 때마다 심란#선산 관리#처가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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