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진영 “책을 통해 타인의 인생과 만나… 독자가 있는 한 문학 계속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9일 03시 00분


[21세기 청년 작가들]<15> 약자 대변한 소설가 최진영

최진영 씨는 “문학의 위기가 제기되는 건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적 잣대 때문이지 문학의 질이 낮아진다는 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계속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최진영 씨는 “문학의 위기가 제기되는 건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적 잣대 때문이지 문학의 질이 낮아진다는 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계속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은퇴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합니다.”

‘너무 나간 얘기인 것 같지만’이라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소설가 최진영 씨(37)의 답은 엄격했다. 이 시대에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해서였다. “글을 쓴다는 건 젊은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뇌세포는 낡아갈 텐데,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그 감각이 더 이상 없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요.”

그는 장편소설 4권과 소설집 1권을 내는 등 작품 이력이 탄탄한 작가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은근히 성실한’ 이 작가를, 주요 문학출판사 한국문학 팀장 다수가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로 꼽았다.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며 작품을 쓰고 있는 최 씨는 17일 만난 자리에서 “누가 권한 것도,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고 애쓴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 글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혼밥’ ‘혼술’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인 10여 년 전 대학생 때부터 그는 혼술족, 혼밥족으로 살았다. 친구 사귀는 게 서툴고 힘들어 혼자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됐다. 여느 문학청년들처럼 합평회를 한 것도 아니고 문인들의 글쓰기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끼적인 ‘혼글’이 소설과 비슷한 모양새인 것 같아 여기저기 응모를 해보다가 2006년 등단하게 됐다. 그러고도 수년 동안 청탁이 없었다. “등단이라는 게 조리사 자격증 딴 것 같더라고요.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어요. 학원 강사 일을 하다 그만두고 장편을 쓰기 시작했어요. 2010년 장편공모에 당선됐지요.”

첫 소설집 ‘팽이’를 냈을 때 “신예 소설가들 중에서 최진영만큼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평론가 송종원)고 할 만큼 조명받았다. 최 씨는 비정규직, 여성, 실업청년 등 약자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소설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지속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밝혔다.

앞선 세기의 문학과의 차이를 묻자 그는 “‘작가=지식인’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고 답했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은 공적인 것이며, 법조인이든 환경미화원이든 지나친 자기비하나 자기애 없이 자신의 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직업의식은 필요하다. 작가 역시 그런 직업의식을 가져야 하며 그 이상의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평등한 직업이지만 작가로서 부여하는 가치가 있을 터이다. 그는 독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은 내밀하고 사적인 일이지만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다. 책 읽는 행위란 TV, 영화, 게임 등 한두 시간 향유할 것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만큼 혹은 그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며 읽고 생각해주는 독자가 있는 한 문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최 씨는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소설가 최진영#연희문학창작촌#소설집 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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