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이 끝없이 증가하는 걸 인류의 진보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절대 떨어지지 않고 고도를 높여만 가는 비행기’ 같은 모델이지요. 이런 성장 중독은 세계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지구 환경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습니다.”
‘인간 개발 보고서’ 등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요 보고서를 쓴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48)가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에서 강연했다. 레이워스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공정무역 거래, 의료와 교육 등을 돕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서 일했고, 인류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시각화한 새로운 경제 프레임인 ‘도넛 모델’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낸 책 ‘도넛 경제학’의 국내 출간(학고재·1만4800원)을 기념해 방한했다 .
레이워스는 이날 ‘도넛 모델’에 대해 “도넛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지만 이 도넛만은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농담을 던지며 개념을 설명했다.
그가 가운데 구멍이 있는 도넛으로 형상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도넛의 안쪽 원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라고 볼 때, 뻥 뚫린 원 안의 공간은 물이나 식량 보건 교육 에너지 주거 등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한 ‘인간성 박탈’의 세계다.
반면 바깥쪽 원은 ‘치명적 환경 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다. 이 테두리 바깥으로 넘어서면 담수 고갈, 대기 오염, 해양 산성화 등이 벌어져 인류가 지구에서 살기 어려워진다. 인류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도넛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도넛 안팎으로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전 세계 인구의 12%는 내일 먹을 음식이 부족하고, 9%는 깨끗한 물을 못 마시고 있어요. 동시에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손실, 비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질소와 인 축적, 토지 개간 측면에서는 생태적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레이워스는 이날 인류가 도넛에 머물기 위한 대안으로 재생형·분산형 경제를 제시했다. 이런 사례로 케냐에 설치된 자원순환형 화장실이라든지 버리는 옷가지의 섬유를 재활용하는 의류, 가구처럼 집에서 조립할 수 있는 자동차 등을 소개했다. 그는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경제학적 질문”이라며 “성장의 기준은 GDP가 아니라 ‘삶의 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