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 화면에 있는 빨간색 벽돌 건물 위로 사람의 손이 쉬지 않고 움직이다. 손은 건물 곳곳에서 간판을 떼다 붙이기를 반복하다. 한 번 붙인 간판을 다시 떼기까지 짧게는 몇 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나 기존 상인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풍자한 박준범 작가의 작품 ‘세 놓음2’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유니온 아트 페어’에서 만난 최두수 감독은 “최근 서울 곳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비싼 임대료를 이기지 못하는 아픔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요즘 작가들은 사회 현상을 관찰해 이를 창의적이고 소비자에게 친근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내놓고 있다”고 소개했다. 올해 3회를 맞은 이 행사에는 성폭력, 직장인 과로, 가족 해체 등을 다룬 작품도 출품됐다. 이 행사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이끌어온 최 감독은 2012년 일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는 등 수 차례 자신의 전시를 한 중견작가다.
그는 유니온 아트 페어가 많은 미술작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고 자부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대형 화랑의 벽을 넘기 어려운 작가 개인이 이 행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직접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수준은 세계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술을 한다고 하면 배고픈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열악하다. 작가들이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력 그림을 베끼는 것부터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최 감독은 “영국에서 공부할 때 시장에서 우리 돈으로 단돈 몇 만 원에 미술 작품을 쉽게 사고파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겪었던 ‘문화충격’이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팔아봐야 한다는 걸 느꼈다. 문화체육관광부, 삼성전자 등도 그의 생각에 공감해 3년째 행사를 함께하고 있다.
최 감독은 이 행사를 계기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는 “지난 두 차례의 행사로 해외에서도 한국 미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걸 작가들이 직접 해내는 저예산 행사이지만 작가들에게 보다 넓은 기회를 주는 장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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