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난다의 김민정 대표는 4일 “허수경 시인이 한국시간 어제(3일) 저녁 7시50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경남 진주 출신인 허 시인은 1987년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허 시인은 2011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로 떠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한 5년간 암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러자 아버지를 치료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다보니까 굉장한 허탈감 같은 것이 들더라”라며 “5년 동안 아버지이시기도 하니까 너무 걱정도 많이 됐다. 그때는 글로 돈이 될만한 일들은 다 하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러다보니까 제가 저를 너무 많이 소모한 것 같은 허탈감 같은 것이 들면서 한 2년 정도 외국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언어를 접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시작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로 건너간 허 시인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동방고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고고학이)굉장히 좀 낭만적으로 보이고 멋져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때는 고고학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신비롭고 재미나 보이더라. 그래서 ‘아, 이걸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허 시인은 독일에서도 꾸준히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등의 시집을 냈다. 또한 수필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등도 펴냈다.
그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냉소적인 사회에 대한 항의다. 저는 그것을 시집 한권으로 표현했는데, 사실은 한 마디로 할 수 있을 거다. ‘좀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자’라는 말을”이라고 설명했다.
허 시인은 지난 8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김민정 대표는 “지난 2월 허 시인이 말기 암을 앓고 있다고 알려오면서 단단한 당부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글 가운데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모아 빛을 쏘여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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