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선조들이 생각한 아름다움이나 선함, 그들의 세계관, 무의식 같은 것들을 나의 언어로 다시 한번 잘 써보고 싶었어요.”
오정희 소설가(71·사진)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손자 손녀에게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아주 소박한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강원 춘천시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강원 지역 옛 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집이다.
“단어나 표현에 신경 쓰면서 우리말의 감칠맛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문장을 맛깔스럽게 써서 어휘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었지요.”
책은 ‘어느 봄날에’ ‘그리운 내 낭군은 어디서 저 달을 보고 계신고’ ‘앵두야, 앵두같이 예쁜 내 딸아’ 등 옛이야기 8편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고씨네’를 제외하고는 12년 전 출간된 그의 동화 ‘접동새 이야기’를 어른 독자를 위해 다시 다듬은 것이다.
기이하고 흥미진진한 설화들은 어디서 들어본 듯 익숙한 소재와 구조로 돼 있어 쉽게 읽힌다. 특히 남성에게 핍박받거나 잊혀진 여성들의 기구한 삶이 묘사돼 눈길을 끈다. 아내를 버리려고 물동이에 있는 물을 쏟은 뒤 다시 퍼 담아 채우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하는 남편이나, 남장을 하고 부잣집 딸과 혼인하면서까지 자기를 희생하는 누나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남동생이 나온다.
“옛이야기 속 여성들은 사회적으로나 가정 안에서, 또 태생 조건 자체로도 약자죠. 그들의 원망이나 한이 이야기라는 무력한 형태로만 표현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그 전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아픔과 상처, 비극을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이 우리 사회에도 생겼지요.”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옛이야기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의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야기는 나의 생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절망하거나 기뻐하는 상황에 갇힌 내가 그 속에서 빠져나와 이겨내도록 돕지요. ‘이런 일을 나만 겪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 결국 해결 방법도 보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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