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는 주룩주룩 빈 당에 가득한데/낮 꿈을 막 깨고 나서 붓을 바삐 찾노니”(목은 이색의 ‘우중·雨中’에서)
가을비가 추적이는 날, 점심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마감 시간이 빠듯하군요. 시구처럼 혼몽함이 가시지 않은 채 바삐 자판을 놀립니다. 이 시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의 온도’가 골라줬습니다. 날씨에 어울리는 한시가 알아서 튀어나오는 시대입니다그려.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계절이고 습기입니다. 술과 관련된 한시를 엮은 ‘한시 속의 술 술 속의 한시’(홍상훈 지음·연암서가), ‘오직 술’(김재연 지음·향원익청) 같은 신간은 이런 심정을 노리고 낸 것일까요.
한시를 유려하게 옮겨 온 저자의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교유서가)에도 손이 갑니다. 당시(唐詩) 선집을 평설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텅 빈 모래섬에 저녁 안개 끼는데/가을 강 위에서 달을 마주했다/또렷한 저 모래 위의 사람/달 속에서 외로이 물을 건넌다”(유장경, ‘강 위에서 달을 마주하다’). 김 교수는 평설에서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음…. 뜨끈한 국물에 소주가 나을까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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