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낮은 음역에서 종소리 같은 단순한 음형을 읊조리고, 이어 현악기가 싸늘한 바람처럼 인상 깊은 주제 선율을 노래합니다. 방송에도 자주 등장해 귀에 익숙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입니다.
이 곡은 유독 요즘 같은 늦가을에 찾아 듣게 됩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는 쨍하게 맑은 날이 많지만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서 찬 바람이 부는 날도 잦습니다. 길에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날리면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죠. 이 곡 첫 악장은 요즘의 이런 계절감과 맞아떨어집니다. 피아니스트가 마음껏 기량을 뽐내기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 으뜸이지만, 음악 팬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작품은 역시 2번인 것 같습니다.
이 협주곡은 시쳇말로 ‘화면발’을 잘 받는 음악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명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1932년 작 ‘그랜드 호텔’로 시작해 고금의 명화들에 자주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1954년 나온 음악영화 ‘랩소디’에 인상적으로 쓰이며 큰 사랑을 받았죠. 우리 영화로는 2006년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이 곡이 등장했습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는 이 작품의 2악장을 팝송으로 편곡한 ‘All by myself’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실제 11월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1900년 가을에 쓰기 시작해서 1901년 11월 9일에 작곡가 자신의 피아노 솔로로 전곡 초연됐죠. 물론 러시아는 겨울이 더 빨리 닥치니 11월 한국 날씨보다는 훨씬 스산했을 겁니다.
다음 달 3일 파보 예르비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조지아 피아니스트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의 피아노 협연으로 이 곡을 연주합니다. 같은 곳에서 15일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최근 이 작곡가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4번 앨범을 내놓으면서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정통함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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