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하기는 매우 어렵다. 적지 않은 돈을 써서 사재기를 하거나 독자가 거부하기 힘든 ‘굿즈’를 끼워 파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작은 동네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비교적 개입이 수월하다. 서점 주인의 의지와 정성만 있다면 말이다.
가령 누군가가 ‘요즘 어떤 책이 가장 많이 나가느냐’고 물을 때 사실과 다르게 대답하거나 해서 순위를 조작한다. 그러니까 ‘역사의 역사’가 잘 나갔지만 그보다는 좀 덜 나가는 ‘혼자서 본 영화’로 대답하는 식이다. 오로지 그 책만을 위해 다른 책들을 들러리 세우거나 방해되는 책들은 과감히 서가에서 철수시키기도 한다. 보노보노에게 위협이 될 것 같다면 곰돌이 푸는 책방에 발도 못 붙이게 한다거나 ‘쓰기의 말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책을 비교시킨다.
물론 이런 전략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서점 주인의 편파적인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폭염을 잠재우기 위해 한낮의 태양에다 끊임없이 얼음을 던지는 행위와 비슷하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봄날의책·2만 원)는 시인이 1967년부터 30여 년간 ‘비(非)필독도서’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칼럼을 수록한 책이다. ‘필독도서’ 또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은근히 특정 책의 구매를 윽박지르는 서평이 아니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과 사적인 견해로 좋았던 책을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소개한다. 싫었던 책은 위트 있게 깎아내린다.
시인이 말하는 책의 상당수가 처음 들어본 것들이어서인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상상의 서평처럼 읽히기도 한다. 나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책을 읽어나갔다. 한 편을 읽고 나면 다음 편을 빨리 보고 싶지만 남아 있는 페이지가 줄어갈수록 드라마의 종결을 원치 않는 시청자 심정이었다. 읽은 만큼 페이지가 더 늘어나는 마법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읽거나 말거나’는 단 한 권도 우리 서점에서 팔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 책을 다음 달 ‘책과생활’ 베스트셀러 목록에 미리 올려놓는다. 비밀스럽고 흥미진진한 공작이 시작됐다.
○ ‘책과생활’은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문, 문학, 예술을 중심으로 자연과학, 디자인, 건축, 에세이, 독립출판물 등 여러 장르의 책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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